미국은 세계 정치문화를 선도한다. 그러나 여성과 흑인에게 선거권이 확대된 역사를 되짚어 보면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미국 여성은 1920년이 돼서야 남성과 동등한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불과 90년 전이다. 흑인이 실질적으로 완전한 선거권을 부여받은 것은 1965년으로 1948년 5·10 총선거로 보통·평등선거를 전면 도입한 우리나라보다도 늦다. 미국에서도 ‘한때’는 ‘여성이나 흑인에게 선거권은 당치도 않지’라는 사고가 지배했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미국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좀처럼 비가 잦아들지 않던 4월 25일 오후 1시 헌법재판소 앞.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수형자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한 위헌성을 주장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교도소 수형자는 물론 집행유예자와 가석방자까지도 현행법상 선거권이 없다. 천주교인권위는 신체의 자유(헌법 제12조)와 선거권(헌법 제24조)은 별개의 헌법상 기본권이므로 전자의 제한을 이유로 후자를 제한할 수 없다는 등의 법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기자에게는 법리적 근거보다 “선거권 박탈은 수형자 등을 우리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라는 이호중 교수의 외침이 더욱 강력히 다가왔다. 교황 요한 23세가 1963년 발표한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가장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 ‘정치 참여의 권리’를 꼽은 이유도 ‘형제애’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대작 「레 미제라블」에는 19년간 징역을 산 전과자 장발장이 나온다. 석방 후에도 전과자임을 표시하는 노란 통행증을 소지한 장발장을 식당이든 여관이든 받아주는 곳이 없다. 미리엘 주교(실존했던 미요리스 주교의 작중 인물)만이 “나는 벌써 당신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요. 당신은 나의 형제입니다”(제1편 ‘옳은 사람’ 중)라며 장발장을 환대한다. 우리가 수형자를 형제로 인식한다면 “한때 수형자의 선거권을 박탈하던 시절이 있었대”라고 말하며 놀라워할 날도 오지 않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