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재미삼아 복지관 사무실 앞에 “외계인 출입 금지”라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외계인의 출입을 금함으로써, 외계인이 아닌 지구인은 누구든지 마음 편하게 들어오라는 역설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재미있다며 한마디씩 보탰습니다. 그런데 평소 발랄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잘 내던 신자 직원이 토를 달았습니다. 물론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였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지 않으세요?” “응? 어, 믿지. 믿지 말고” “그런데, 왜 신부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인신 하느님의 피조물인 외계인을 차별하시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그렇게 되나? 허허, 내가 한방 먹었네. 이제부터 외계인도 사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그런데 그날 이후 저는 묘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직 알 수 없지만 먼 훗날, 아니면 바로 오늘이라도 외계인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큽니다. 심지어는 외계인이 사람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종교집단까지 생겨나고 있습니다. “라엘리안 무브먼트(Raelian Movement)”라고 하는 외계인 숭배 집단입니다. 이들은 외계인이 자신들의 DNA를 변형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야기가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이런 문제에 호기심이 많던 복지관 이용자 중학생 한 녀석이 저를 찾아와서 심각하게 이야기합니다. “신부님, 제가 만약 외계인의 DNA에서 만들어졌다면, 앞으로 나이가 들면 ET처럼 대머리가 될까요?” 저는 얘가 또 무슨 엉뚱한 질문을 할까 두려워하며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제서야 이 학생이 방송에서 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저도 궁금증과 막연한 불안감으로 방송다시 보기를 보았습니다. 조금 충격적 이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볍고 쉽게 알려면 인터넷이 제격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외계인에 대한 정보가 수없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당연시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저기 어디서 주워들은 지도 모를 이야기들과 출처불명의 사진, 해괴한 이론까지, 충격적인 말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신빙성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인터넷의 주장대로라면, 외계인은 교묘히 위장하여 바로 내 옆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삼아 생각해 보건대, 외계인이 성당에 와서 기도하고, 영성체를 하면서 함께 하하호호 웃는다면,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감쪽같이 모르고 산다면, 그래서 고해성사를 행하고(외계인은 무슨 죄를 지을까요?), 사랑하는 형제자매님이라고 부른다면… 우습기보다는 섬뜩합니다. 그냥 상상이기에 다행이지만요.
젊은이가 외계인에 대해 묻는다면
20세기 가장 유명하다는 과학자로는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천체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대중적인 인기 또한 대단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1980년에 방영되었던 <코스모스>라는 천체물리학에 관한 다큐멘터리 진행자였습니다. <코스모스>는 전 세계 60개국 방영, 6억 명이 시청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프로입니다. 그후 책으로도 만들어져 아직까지 꾸준히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입니다. 칼 세이건 원작의 SF 명작 ‘콘택트’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합니다. “이 우주가 인류 하나만을 위해서 만들어졌다면, 그건 낭비가 아닐까?”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종교를 미신에 가깝다고 주장하던 사람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무척 껄끄럽습니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이들, 특히 젊은이들이 칼 세이건의 이 대사를 인용하며 우리에게 외계인에 대하여 묻습니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할까요? 하느님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셨고, 만약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지적 존재를 만드셨다면, 하느님의 오지랖 넓은 사랑으로 볼 때 그들도 사랑하실 것이고, 결국 외계인은 하느님 안에서 사랑해야하는 우리의 형제가 됩니다. 외계인 형제라….
아직까지 외계인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외계인 존재설과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너무나 많이 널려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여기서 무엇을 택해야하며, 신앙의 도전을 받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야할까요?
비가 그치지 않는 ‘방주의 창’밖을 내다보며 엉뚱한 생각에 잠깁니다.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과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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