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안에서 종교인의 사명과 역할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소리가 점점 많아져 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가톨릭교회의 사제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국민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 뜻있는 평신도들 안에서도 가톨릭 성직자들의 사회 참여에 대한 반감과 비판이 고조되어 오지 않나 여겨진다. 교회 안에서조차 사제의 존엄과 권위가 점점 퇴색되어 가고, 무엇보다도 세속화(世俗化)의 물결이 신자들은 물론이고 사제들에게까지 깊이 파고드는 것은 아닐까?
불교계의 경우 큰스님들의 즉위식이나 법회를 불교방송(TV)을 통하여 보면 불교 신도들은 늘 이구동성으로 “부디 부처님 되소서!” “꼭 성불(成佛) 하소서!”라는 간절한 축원을 한다.
이에 비하여 가톨릭교회의 큰 행사는 물론 사제의 영명축일이나 은경축 등의 행사에서 비는 신자들의 기원은 고작 “영육간에 건강하소서!” “부디 건강하소서!”가 전부인 듯하다. 언제부터인지 교회 안에서 “부디 성인 사제 되소서!”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웰빙문화의 홍수 속에서 사제상도 속화되어 가고 축소 지향적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아닐까?
“범속(凡俗)한 사제는 우리를 미혹(迷惑)한다.”(조르쥬 베르나노스)
다시 6월 성심성월에 사제성화의 날을 맞이하며 옷깃을 여미고 깊게 성찰하며 기도해야 하겠다. 좀 더 목과 어깨의 힘을 빼고서 말이다!
오늘날 현대 세계의 사조와 문화 안에서 “사제란 무엇 하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초(端初)는 하느님 백성인 교회공동체의 바람과 열망 안에서 볼 수 있다. 교회헌장은 이를 신앙의 감각(sensus fidei)이라고 표현한다.(교회헌장 No.12,31,35)
단적인 예가 2002년 서울대교구 시노두스이다. 그해 2월 어느 주일미사에 참여한 신자 32만 1059명이 선정한 시노두스의 주요 의제 중 첫 번째가 성직자(16.48%)였다. 성직자에게 바라는 제안은 대략 ①기도하는 사제 ②강론 잘 하는 사제 ③탈권위적인 사제로 요약할 수 있다. 교구 시노두스는 교회가 찾아가야할 사제상을 아흔아홉 마리 양들을 광야에 놓아 둔 채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헤매는 선한 목자(루카 15,3-4: 마태 18,12-14)에서 보았다.
이에 대한 사목적 성찰과 토론의 기초는 ‘기능으로서의 사제직인가? 아니면 존재(存在)로서의 사제직인가?’였고 신학적 명제인 “행위(agere)는 존재(esse)를 따른다”(토마스 아퀴나스)가 많은 영감의 빛을 주었던 것이다.
사제직은 그 지망자의 덕성이나 능력, 재능을 보고 선택되고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느님 선물의 무상성(無常性)에서 비롯되기에 사제는 성사적인 존재이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이다.”(요한 15,16)
“사제들의 사제직은 그리스도교 성사들을 전제하지만 개별 성사도 수여된다. 이 성사로써 사제는 성령의 도유로 특별한 인호가 새겨지고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와 동화(configuratio)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행동할 수 있다.”(교회헌장 10항, 사제직무와 생활 3항)
이에 따르면 사제직의 성사성은 예수님의 존재와 행위에서 비롯되며, 그분 안에 머무를 때에만 가능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복음 말씀에 비추어볼 때 사제의 실존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또 다른 그리스도(Sacerdos Alter Christus)이다.
사도 요한은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너는 나를 따라라!”(요한 21,22)로 요약하여 전해준다.
오늘날 이 시대의 사제적 실존이란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주님으로 모시고 따르며, 복음을 선포하였듯이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복음의 말씀을 살아가는데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데 있지 않은가?
특별히 자기 양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생명을 내어 주시는 착한 목자이신 주님(요한 10,11)을 드러내는 투명체(transparens)가 되기 위해서 사제의 인간성과 존재 안에 서품의 은총을 통하여 주입된 목자의 사랑을 자라나게 하고 활짝 꽃피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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