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매년 하루를 정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선언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과 동의의 의사 표시를 위해 ‘생명을 위한 행진’을 하곤 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매년 봄 지역별로 정해진 날에 종교계와 시민단체, 이른바 프로라이프 시민들이 이러한 행진에 나선다.
지난 9일 처음으로 시민들의 생명을 위한 대행진 행사가 마련돼 인간 생명을 수호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행진은 기본적으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표시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가장 약한 존재인 태아의 생명권을 수호하고, 상실한 성 도덕과 윤리 의식, 건전하고 건강한 성 문화의 진작을 위해 준비된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열린 이번 생명을 위한 대행진은 이러한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절박한 시대적 요청에 대한 부응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하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점점 더 죽음의 문화로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도덕적 양심의 회복을 위한 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특별히 정부가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참으로 깊은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응급피임약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그 복용이 곧 실질적으로는 낙태와 같은 효과를 야기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에 버금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 타락한 성 문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병폐는 도덕적인 의식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성의식과 문화의 해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이다.
우리는 응급피임약이 지니는 윤리도덕적 문제뿐만 아니라, 그 의학적이고 보건학적인 문제점에도 주목한다. 사전피임약만으로도 여성의 몸은 심각한 부작용에 처해진다는 것은 이미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규명돼 있는 사실이다. 대개 응급피임약의 독소 성분은 사전피임약의 10배 이상이다. 따라서 여성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해악성은 심각한 지경이다.
이러한 약을 의사의 처방이 필요없는,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오남용과 부작용의 우려를 일절 무시하고,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성 문화를 더욱 방조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그 동기가 어떠한 것이든, 우리는 이처럼 심각한 임기응변식의 발상에 대해 결사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낙태에 준하는 중대한 인간 생명의 훼손 행위에 대해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반대 의사를 표명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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