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가톨릭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10년이 되었나 보다. 그동안 차 안에서 보낸 적지 않은 시간, 차도 위에서 나는 무엇을 터득하였을까.
차도라는 곳은 누가 먼저 확보했다고 소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 점에서는 고물차에도 페라리에도 철저하게 공평하다. 아니, 누군가 한 공간을 오래 차지할수록 손해이며, 부지런히 기득권을 버려야만 새로운 곳으로 전진할 수 있다.
차도에서는 누구든 한 차로를 고집하지 않는다. 때에 따라 노선을 변경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다른 이의 앞섬을 인정하고 어떤 이의 뒤처짐을 비웃지 않으며 누군가의 끼어듦을 편안히 받아들인다. 차도에서는 너무 느려도 너무 빨라도 다 위협적이다. 가까운 사이도 먼 사이도 모두 소통에 지장을 준다. 적당한 간격과 적당한 속도가 관계 유지에 안전하다.
차도에서는 누가 화나게 해도 복수를 해선 안 된다. 공격했다가는 더 큰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차라리 양보하는 편이, 분노를 삭이는 편이 훨씬 낫다.
무엇보다 차도에서는 서로가 남이 아니라, 하나의 유기체임을 확인한다. 사고가 나면 모두 발이 묶이고, 누구 하나라도 다치면 모두 고생이다. 차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웃고 손 흔들던 이도 곧 사라지고, 눈 흘기고 욕하던 이도 얼마 안 가 찾을 수 없다.
그렇다. 차도에서는 기득권도, 경쟁도, 주장도, 감정도 모두 찰나일 뿐,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는 법을 훈련한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허사이니, 매사 조심하며 겸손해야 함을 배운다. 알아도 실행하기 쉽지 않기에 매일 고된 수련을 받는 것이다.
그 밖에도 찻길에서 배운 지혜를 삶에 적용하며 산다면 매일 오가는 찻길 역시 인생의 훌륭한 학교일 수 있다. 교통 체증으로 묶인 시간마저 유익한 수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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