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 사회의 현실
자녀를 원하지 않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졌습니다. 맞벌이를 함으로써 수입은 최대화하고 자녀를 포기함으로써 지출을 줄여 여유 있는 생활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여성들의 무조건적인 출산기피 때문만은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이혼율과 독신가정이 증가함에 따라 모녀가정이나 부자가정과 같은 기형적 형태의 가정이 증가하면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지는 전통적 가정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 행복의 추구와 삶의 질을 우선하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1.23명이라고 하는데, 합계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경우 초저출산 사회로 분류됩니다. 물론 정부에서는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지만 보육환경 개선, 세제 혜택,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장애요인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출산은 혼인의 목적
자,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혼인 면담 때 “신부님, 저희는 자식 없이 둘만 행복하게 살 거예요!”라고 한다면 면담 신부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요즘은 사교육비도 많이 들고, 뭐든지 유아 및 어린이 용품은 비싸니까 차라리 자녀 없이 사는 것도 좋을 겁니다”라고 하겠습니까? 어림없습니다. “이 상태로는 두 분의 혼인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듣게 됩니다.
교회법 1055조 1항에 의하면 혼인의 목적은 ‘자녀 출산과 부부의 선익’에 있습니다. 혼인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자녀 출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녀 출산을 거부한다는 것은 혼인에 관하여 무지한 자이고, 이런 사람은 혼인 합의를 할 수 없는 자(1096조 1항)로 인정됩니다.
왜 교회에서는 혼인의 목적이 자녀출산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까?
인간은 하느님께 생명을 받아 존재하며, 이 세상에서 스스로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보존이라는 숭고한 직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 품위에 알맞은 방법으로 생명 보존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서는 가정 안에서 출산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 생명을 전달할 책임을 인간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출산을 통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다른 차원에서 협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출산을 ‘프로크리에이션’(procreation)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남자와 여자는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창조력에 참여하도록 하느님께 위임 받은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 사랑의 열매이며, 또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본성 자체를 통해서도 출산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남자와 여자의 몸과 영혼은 보완적이고 상관적이며, 이렇게 일치된 부부는 자녀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남자와 여자는 혼인으로써 하나가 되고, 자신이 받은 생명의 선물을 다음 세대에 전달함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출산 거부는 자기 존재의 부정
이런 의미에서 출산을 자기 선택이요,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협력자로서 하느님의 창조 권능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이며, 이는 곧 하느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 자녀로서의 신분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 존재의 근본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느님 자녀로서 자신의 품위를 부인하면서 어떻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 것이며,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출산과 양육은 인간 성숙의 길
자녀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극복하고 자녀에게 모범을 보이며 사랑을 완성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면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에서 ‘아버지 뜻대로 하시도록’ 기도하면서 인간 구원을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면서 이 어려운 길을 걸어갈 때 인격적으로도 성숙하고 완덕에도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형전 신부는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서울대교구 구의동·개봉동·상봉동 보좌신부를 거쳐 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 담당을 맡은바 있다.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 사제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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