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이랑 천 명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까?”
이 단순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열 명과 천 명의 장비 수준과 지형, 사기, 보급 등을 되묻는다. 그러나 중세 유럽인들은 간단히 대답할 것이다. “주님께서 도우시는 쪽이오.”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이 아니라 진실로 그들은 그렇게 믿었었다. 그래서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이 일어났다.
과거 로마인들이 법에 따라 재판을 했던 것과 달리 중세 유럽인들은 주님께 심판을 맡겼다. 옳은 사람을 주님께서 돕는다는 굳은 믿음으로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고 오래 버티게 한다던가, 뜨겁게 달군 돌덩이를 누가 더 오래 잡고 있는가에 따라서 죄의 유무가 판가름 났다. 중세에 만연했던 결투 역시 정당한 피고인은 주님께서 결코 저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뒷받침돼 있었다.
르네상스의 인문학자들이 왜 자신들의 조상이 살았던 시대를 암흑기라 불렀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지금 우리가 결코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그들에 비해 우리가 더 ‘인간답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1분 1초도 헛되이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친구와의 우정보다는 일단 좋은 성적으로 좋은 학교에 가야한다고 가르치고, 경쟁에서 이길 것만을 강요한다. TV와 인터넷에서는 연일 자극적인 것을 보여주며 승자들은 이러한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유혹한다. 승자는 모든 것을 갖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비정한 승자독식의 논리가 과연 인간다운 것일까?
기계 아니면 짐승이 될 것을 말하는 세상에 사람이 서있을 곳은 어디일까? 그곳은 교회여야 한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계신 곳이야말로 인간이 바로 설 장소이다. 그렇다고 다시 중세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중세 유럽과 현대 사회를 통해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어버렸을 때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봤다. 이제는 그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인간다움을 추구해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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