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조금 철 이른 휴가. 길다란 낚싯대를 들고 아주 긴 다리를 건너 섬으로 가는 길이었다. 올해 윤달이 끼었다나 어쨌다나 해서 고기들이 나오긴 좀 이르다곤 했지만 급한 맘에 짬을 내 서둘렀다. 섬으로 가는 다리가 꽤 길어 한 20분은 족히 달려야 하고, 가는 길에 보이는 바닷물의 색깔을 보면서 대강 그날의 조황을 예감한다.
그런데 아뿔싸, 물색이 많이 탁하다. 대개 진하게 푸른색에 바람이 좀 있으면 하얀색의 포말이 바닷물 위에 생채기를 낸듯한 모양새가 되는데 이날은 포말에 거품이 퍽 많고 클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물의 색깔이 아주 탁하다. 동행한 조사님을 애처럽게 쳐다보니 권위 있게 하시는 말씀이, “어이구 물이 다 뒤집어졌네…. 쯧쯧… 오랜만에 오셨는데…” 염장을 지르신다.
하긴 몇 번 안되는 경험으로 볼 때, 물색깔이 요 정도밖에 안 나오면 고기 나오는 것도 딱 요 정도라는 걸 초보인 나도 잘 알긴 한다. 하루 종일 낚싯대 담가야 한두 마리.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을 해봤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후 3시부터 시작된 낚시가 밤 10시가 다 될 때까지 손바닥만 한 광어 한 마리가 전부였다. 동행한 고수님은 욕심을 버리시고 걸핏하면 점퍼를 뒤짚어 쓰시고 테이블 위에 취침.
라면 하나 끓여먹고 돌아오는 길에 고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물이 뒤집어지면 사실 고기 잡긴 어렵다. 밑에 있던 물이 위 아래로 흩어지고 거꾸로 올라와서 물이 혼탁해지고, 당연히 먹잇감을 눈으로 보고 찾는 광어 같은 물고기는 탁한 물에서 먹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우니까 입질이 뜸해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미끼를 들이대고 흔들어봐야 보이는게 없으니 물지를 못한다는 슬픈 이야기. 날을 잘못 잡았으니 전적으로 어부 탓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에 조금은 가슴 짠한 느낌. 가끔 그렇게 뒤집어지지 않으면 물이 더러워진단다. 위와 아래가 바뀌고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해야 바닥에 있던 쓰레기들이 물 위로 떠서 먹잇감으로 오해한 갈매기들이 채가고, 가끔 오는 자원봉사자들이 치워주고, 물고기들도 물 위로 뜬 부유물들을 처치해준단다.
실제로 물이 뒤집어진 날은 낚시에 걸리는 놈들도 많이 달라진다. 평소엔 전혀 올라오지 않던 장어들이 물 뒤집힌 날은 무슨 계모임이라도 하는 듯 심심치 않게 입질을 한다. 소주 안주 하던 장어구이 생각이 나서 한 번 구워먹어보긴 했지만 미끌한 감촉이 싫어서 대개는 그냥 놔준다. 어쨌든 뒤집는 날은 청소날인 건 분명하다.
참 구태의연하고 도식적이긴 하지만, 이처럼 평화롭지만 안일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곧 몸과 마음을 일신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다시 한 번 고수의 말씀에 확인을 해본다. 뒤집어져야 청소가 된다는 게다. 생각해보면, 모든 인간의 일상사가 그러하다. 눈물 젓은 빵을 어쩌고 하는 것도 고난을 모르고서 어찌 평화와 안녕의 가치를 알겠는가.
집안이 때에 찌들어서 바퀴가 서너마리 돌아다니는 걸 본다면 어찌 집안을 꼼꼼하게 청소하지 않겠는가. 불효자식이라도, 부모님의 허리가 무너지고 관절과 뼈 마디들이 부어오른 것을 본다면 어찌 효심이 일지 않을까. 내 일상이 뒤집어져 버린다면, 바로 그때가 내가 일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근래 들어 더욱 생각나는 것은 우리 교회도 그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너무 편안해진 교회, 너무 안락한 교회가 과연 참으로 평화로운 교회일까 하는 생각이다.
밑에서는 물이 뒤집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혹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뒤집어지고 나서야 알아차리는 것이 좋은 일일까? 사실 뒤집어져야만 아는 것이 인간의 일이 아닐까? 라는 식의 우려와 근심은 사실 많은 이들이 하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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