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나는 도서관과 인연이 깊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던 때가 있었다. 공기는 좋은데 교통이 불편했다. 차를 가진 어른이야 괜찮지만, 아이들은 버스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불평이 컸다. 결국,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중간 거점으로 인근 도서관 네 곳을 활용하기로 했다.
원하는 때에 집에 들어가지 못한 세월이 삼 년이라면 무척 고생스러울 법도 한데,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일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이유는 모르지만, 도서관에 들어서면 이상스레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지고는 하였다.
일전에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 까닭을 알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서광인 남동생은 어릴 적부터 책 냄새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누나인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오는 문학선집을 기다리며 늘 마음이 설렜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나도 책 냄새가 좋아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이에게는 쾨쾨할 수 있는 고서(古書)들의 냄새가 우리에겐 ‘프루스트 효과’(Proust effect)를 일으켜 꿈 많고 행복했던 시절로 데려가 심리적 안정을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의식까지 통찰하는 주님께서는 아무래도 내게 그 좋아하는 책 냄새를 실컷 맡게 해주려고 작정하신 듯하다. 한 층만 올라가면 도서관인 곳에 일터를 마련해 주시고 아예 책을 만들라고 부르셨으니 말이다.
요즘 우리 학교에서 일 년에 한 권씩 펴내고 있는 ‘소공동체를 위한 성경공부’와 ‘십대를 위한 성경교재’ 시리즈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예전에 ‘구역장 반장을 위한 복음해설’을 만들기 위해 교구청에서 삼 년 동안 봉사하던 때는 짐작도 못한 일이다. 그때 축적된 노하우로 나 개인의 책도 펴내고 또 이제까지의 영향이 적지 않다 하겠으니, 봉사는 그야말로 봉사로 끝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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