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응급’ 피임약을 둔 논란이 격해지고 있다. 우리는 사전피임률 조차 2% 안팎에 불과한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응급’ 피임약에 대한 최소한의 장치조차도 풀어버리겠다는 안이한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일반의약품으로의 전환은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많은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 논란의 지점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리는 먼저 이 논란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성찰의 소홀이 가장 첫 번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응급’ 피임약이 사실 ‘화학적 낙태약’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교회는 교리와 자연법상의 도덕적 이치를 바탕으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을 형성할 때 이미 하나의 인격체로서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 인간 생명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수정란의 착상을 가로막아 결국은 낙태의 효과를 내는 ‘응급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이라는 최소한의 규제와 조건으로부터도 풀어버리겠다는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
두 번째는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일반의약품 전환을 찬성하는 쪽은 흔하게 나타나는 부작용들이 단기적이고 따라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회 사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응급피임약의 편의성이라는 특성상 반복적 사용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결국 단기적 부작용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오남용에 대한 우려이다. 이미 지적했듯이 사전피임률이 불과 2%에 그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30~40%의 사전피임률을 지니고 있는 서구 국가들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다. 사전 피임에 대한 충분한 인식과 실천을 전제로 할 때,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가능성이 검토돼야 하며, 더욱이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거쳤던 서구 국가들에서도 낙태율과 피임 실패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남을 볼 때, 응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발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책적 선택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 안에 생명의 존엄성과 참된 의료 실천의 가치에 대한 중대한 문제이다. 다시 한 번 문제의 중대성을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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