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사랑
얼마 전 필자가 일하는 청소년수련관 학생이 옥상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변심한 여자 친구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세상은 끝났습니다! 제 인생은 끝났습니다!” 옥상에서 떨어진 친구가 어떻게 제게 말을 했냐고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뛰어내린 곳이 다행히 건물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 지붕 위 캐노피였습니다. 어두운 밤이라 아래가 보이지 않아서 천만 다행스럽게도 재질이 부드러운 캐노피 위에 떨어져서 큰 부상 없이 구조 됐습니다. 덕분에 낡은 캐노피를 몇 백 만원 들여서 수리하는 쾌거도 이루었습니다(물론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자유낙하 친구에게 돈을 물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친구 요즘은 말짱한 얼굴로 웃으며 돌아다닙니다. 말 그대로 밥만 잘 먹습니다.
우리도 언제였든지 모를 그날 세상이 다 무너지는 실연의 아픔에 몇 번쯤 울어 보았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도 사랑이란,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참 묘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털어 놓는, 아이들의 사랑과 수많은 미디어들이 전하는 청소년들의 사랑 행태를 보면 놀랍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럴 수가 싶은, 타락한 어른들의 모습을 닮은 추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볼썽사나운 놀음도 있고, 아직 어려서 저질렀구나 싶은 안쓰러운 사랑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던 사랑을 가장한 추악한 사랑 놀음이던, 문제는 서로의 몸을 탐닉하다가 발생하는 성행위와 피임, 낙태의 문제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적절하지 않은 성행위가 몸과 마음에 어떤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하고 저지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과 임신을 숨기기 위한 불법 낙태, 그로인한 정신적 고통… 대인 기피증, 남녀에 대한 불신 등 악순환이 반복되기 일쑤입니다.
잘못된 상식이 낳은 비극
먼저 부적절한 선을 넘는 청소년의 성행위자체가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자제 하지 못했을 때, 임신이 되겠다 싶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요? 어른이라면 원치 않는 임신을 피하기 위하여 병원 처방을 받아 사후 응급피임약(노래보)을 복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가톨릭교회가 금지하고 있는 피임법입니다. 가톨릭교회는 나이에 상관없이, 병원의 처방전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노래보 사용 자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노래보는 지름 5mm, 무게 0.75mg. 흰색에 무광택 표면 처리된 알약입니다. 이 약은 성관계를 맺은 여성이 72시간 안에 한 알을 먹고 다시 12~24시간 안에 한 알을 더 먹으면 임신을 98%까지 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약은 단순한 피임약이 아니라 신앙문제, 형법상 낙태문제, 나아가 집단 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고도의 정치적 약입니다. 편리한 ‘사후’ 피임약이기에 파생할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정신적 신체적 성 문란의 문제 때문입니다. 노래보는 수정란이 자궁 내막에 착상 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피임약이 아니라 낙태약입니다. 인공피임도 안 되지만 더욱이 낙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노래보를 구할 수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 되는 아이들은, 원하지 않는 임신이 되겠다 싶을 때 호르몬제 피임약을 한 달 치나 두 달 치를 한꺼번에 먹어버립니다. 아이들의 잘못된 피임 상식이 낳은 비극입니다. 한창 몸이 형성되고 건강하게 무르 익어야할 나이에 호르몬 균형이 깨어지면 어떤 결과를 가져 오겠습니까? 당장은 임신을 피할 수 있겠지만, 영구 불임이라는 무서운 몸의 파괴가 올 수도 있고, 자칫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나무라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나무라기 전에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아이들이 밝게 배우고 부딪히며 인격을 형성해야할 학교는 폭력의 온상이 되었고, 가정은 지치고 피곤해졌으며, 교회 또한 입시 경쟁의 최전선인 학원에 아이들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사회는 돈벌이에 핏발선 어른들이 온통 점령했습니다. 세상은 인류 발생 이후 몇 백만 년보다 어제그제 20년이 더 많이 변했습니다. 이 변화를 저조차도 따라가기 힘든데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정신의 성숙보다 더 앞서 가는 몸의 변화에 두려워하며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 돈과 권력의 노예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추악한 단맛에 혀를 갖다 대는 아이들.
비 그치지 않는 방주의 창 너머로 우리 아이들이 고개 숙인 채 비를 맞으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과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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