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간 관계
제가 청소년국에 있을 때 CYA 회장단이었던 아이 하나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엄마랑 싸웠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엄마랑 싸울 수 있니? 엄마한테 대든 거지.” 그 말을 듣고서야 “예, 엄마한테 대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엄마랑 싸울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리 따지나”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청소년들 중에서 어머니께 불손한 태도를 지닌 친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목국에 와서는 청장년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 세대를 만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그 중의 몇몇 분들은 자녀와의 갈등 때문에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말도 잘 듣고, 속 썩이지 않더니 이젠 좀 컸다고 엄마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부모를 기피하고, 심지어는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내가 저런 자식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나” 싶기도 하고, 때로는 죽여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자녀들이 모두 엄마한테 소리 지르고, 화를 내며, 성당에도 나가지 말라고 한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지 않은 분들이 자녀와의 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표현해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여 웃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른들 앞에서 불손한 언행을 삼가며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할 것을 가르쳐왔는데 작금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 어찌된 영문일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며, 부모님께 효도하여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르려고 노력해왔지요. 그런데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나서는 똑같은 원칙을 자녀에게도 적용합니다. “다 너를 위해 하는 소리니, 너는 무조건 내 말대로 따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서라도 따르도록 강요해왔겠지요.
자녀에게 상처 받으셨다는 분께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자녀에게 짜증내고 화낸 만큼 가장 친한 친구에게 짜증 내고 화를 냈다면 아직까지 그 친구와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다”라고 대답하시더군요. 당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자녀에게 많은 요구를 했고, 만족스럽지 않을 때 내 기분대로 짜증과 화를 냈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자라면서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자녀는 부모님께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게 됩니다. “부모님의 강압적인 요구로 저는 이렇게 상처를 받았습니다!”라는 표지입니다. 그 표지를 보고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억압만 하려다보면 자녀들의 반발로 인해 부모도 똑같이 상처를 받게 됩니다.
엄마에게 불손하게 대하는 아이가 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행동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어머니께서 자녀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실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언제 그렇게 느끼실까?”하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더군요. 부모님들께 “당신의 자녀들이 부모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까요?”라고 질문하면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부모님들이 당신 자녀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 사랑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며, 서로 미워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대립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자렛 성가정처럼
우리는 나자렛 성가정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죽음을 각오한 순명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고, 성요셉께서도 약혼자를 보호하려는 마음과 하느님께 대한 순명으로써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는 부모는 자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 지를 가르쳐주는 가장 훌륭한 모델이자 스승입니다. 이런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자녀는 말과 행동으로써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느님 안에서 온 가족과 일치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모님은, 가족들은 언제 나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실까요?”
이형전 신부는 1999년 사제로 서품됐으며 서울대교구 구의동·개봉동·상봉동 보좌신부를 거쳐, 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 담당을 맡은바 있다. 현재 서울대교구 사목국 가정사목부 담당 사제로 봉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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