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 되는 6월의 첫째 주일. 2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기도 해왔던 날이다. 성전 건축비 채무를 청산한 기념으로 주임신부님께서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신 것이다. 전체 인원 700여 명의 대이동, 신자인 의료진을 대동하고 떠나는 기차여행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시간이었는데도 성당 앞에는 많은 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족도 딸아이는 교리교사로, 남편과 나는 준비물을 챙겨 가방에 담고 손에 들었다.
시발역 청주역에 도착하니, 일곱 시쯤 역 구내로 열차가 들어 왔다. 기차는 여행의 기대감으로 설레는 우리들을 싣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하루 일정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있은 후, 신부님 말씀으로 ‘사제생활 38년’의 색다른 미사 집전이 있었다. 우리들도 이번 여행을 주도해 주심에 감사의 기도와 오늘 하루 무사한 여행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다. 구역별로 나눠 탄 객차에서 의례적인 인사보다 진심어린 평화의 인사를 옆자리 형제에게, 앞쪽의 자매에게 나누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마음을 터놓았다.
스르륵 슥… 레일 위를 달리는 바퀴소리를 들으며 고추의 고장인 음성을 지날 때는 오웅진 신부님과 꽃동네 첫 삽을 뜨던 기억도 떠올랐다. 꽃동네 시조가 된 최귀동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밥을 얻으러 왔던 생각도 나고…. 오웅진 신부님! 위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각부터가 달랐다. 그때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봄날, 움막에서 자기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거지나, 장애가 심한 부랑아들에게 짝을 지워주시고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을 축복해주시는 신부님을 곁에서 보면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오늘과 같은 위업을 세우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쾌속으로 힘을 받은 열차는 최양업 신부님의 기념성당이 있고 방주모양을 주제로 만들어진 배론성당이 있는 제천을 지나고 있었다. 철길 따라 늘어 선 아까시나무에는 하얀 꽃이 포도송이처럼 주저리 져 있었다. 빨강·파랑의 슬레이트 지붕이 눈에 띄는 마을을 지나기도 했다.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 안에서 노래방 도우미를 하고 있는 교리교사들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를 태웠고, 간단한 식·음료를 판매하는 청년 회원들은 기금 마련을 위하여 밀차를 옮겨가며 이동을 하기도 했다. 이때 옆 칸에서 보여 지던 보좌신부님의 찬란한 율동과 찬가는 이런 기회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보너스, 여행의 하이라이트였다.
붉은 녹물이 배어 있는 자갈돌이 보이는 가 했는데, 폐광도시. 안전모를 쓴 검은 얼굴이 생각나는 탄광촌, 사북이었다. 산업전사 광부들은 떠나가고 이제는 카지노로 유명한, 한탕 기회의 땅으로 변해 버린 곳. 사용한 연탄을 쌓아 올려 이웃과의 경계, 담으로 재활용한 것이 신기하다고 여길 때 점차 속도가 느려지던 열차는 드디어 고대하던 종착역 정동진에 도착했다. 역 앞에 바로 펼쳐진 바닷가. 푸르고 넓어 끝이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 바닷바람이 ‘확’ 하고 가슴에 안겨 왔다. 모래공원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고 해변을 걸었다. 밀려오는 물결에 발이 젖을세라 뛰어 나오기도 하며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동심의 세계에 빠진 신부님과 수녀님은 어린아이들과 모래판에서 보물찾기에 여념이 없었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음악기기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흘러나오면서 결선 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구분 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신부님 말씀대로 미친 화합의 한마당 잔치였다.
지나온 많은 시간 동안 새 성전을 짓느라고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본당은 사춘기의 흔들림도 청년기의 아픔도 지나고 내년이면 본당설립 25주년을 맞게 됩니다. 주임신부님 작사·큰 수녀님 작곡으로 복대동 성당가도 만들어져 용기 충천하여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발돋움으로 성년의 성당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밤 열한시 삼십분. 대이동의 막이 내리고 우리는 무사히 돌아왔다. 왕복 10여 시간의 기차여행에서 큰 사고 없이 잘 돌아온 것은, 우리 본당신부님의 크신 역량이 아니고 무엇이랴! 명장 아래 명졸 있다고 했다. 우리는 복 터이었다. 부디 주님의 은총이 복대동본당에 풍성히 내려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복 터! 복대동본당이여 영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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