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요녀와 어리석은 남정네
“역시 K-POP이야! 현란한 몸짓과 사람을 녹일 듯한 눈빛! 그래 언제봐도 K-POP이야!”
살로메는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걸 그룹의 섹시한 춤사위와 뇌쇄적인 눈짓과 손짓에 가슴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가슴을 한껏 내밀며 걸 그룹의 춤을 따라 하며 생각합니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슈스케4에 꼭 나가고 말거야! 꿈은 이루어져야해! 엄마만 허락하면 되는데….’
살로메는 속이 탔습니다. 슈퍼스타K에 출전만 하면 1등은 아니더라도 기획사 하나쯤은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도통 엄마는 자신의 재능과 끼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엄마는 원래 남편의 형님이었던 사람과 결혼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나에게는 똑바로 살라고 잔소리를 해댑니다.
큰 아빠였던 새 아빠는 왕이라는 체통도 없이 자기 동생 아내에게 빠져 불륜 같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아내 말이라면 그저 헤벌레 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 내가 어떻게 올바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머리에는 오직 K-POP만이 맴돌 뿐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새 아빠의 생일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새 아빠는 신이 났습니다. 평소에도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생일잔치가 벌어졌으니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궁전이 떠나갈 듯이 풍악을 울리고 어느 기획사에서 불러왔는지 이류 가수들과 삼류 무희들이 난장판에 가까운 놀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날이 날인 만큼 평소 잔소리 많던 엄마도 별 불평 없이 새 아빠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포도주를 홀짝거리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보던 나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1부 무대가 끝나고 2부 추태가 시작되기 전, 사람들이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기대 할 때, 이때를 놓치지 않고 무대 가운데로 들어가 평소 갈고 닦았던 걸 그룹의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고관들과 무관들, 갈릴래아의 유지들은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그러나 이내 헤벌쭉 벌린 입가 침을 닦아내며 내 춤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아빠의 눈빛은 음흉하게 빛났습니다. 나는 춤을 추면서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작전이 들어맞고 있다는 것을, 평소 권력과 돈, 지위를 이용하여 온갖 퇴폐 향락을 구가하던 썩어 문드러진 인간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엄마였습니다. 자신은 요부 짓으로 이 자리까지 왔지만, 딸만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어미의 묘한 심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돌발적인 딸의 춤을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러나 춤이 끝나고 헤로데가 딸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하고 말하는 순간 엄마의 얼굴에는 야릇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살로메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모든 게 생각대로였습니다. 살로메는 엄마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엄마, 이번에 슈스케4에 나가게만 해줘. 그러면 엄마가 원하는 건 다 청해 줄게!” 엄마 헤로디아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자신보다 더 영악하고 요사스러운 애가 자기 딸이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본연의 악녀로 돌아온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하고 말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야 어찌 되었건 말았건…. 그리고 잠시 후 요한의 머리는 비통하게도 두 요녀와 어리석은 남정네의 헛된 체면에 의해 쟁반에 담기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타락한 왕궁의 밤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한 씁쓸한 상상입니다. 상상을 하다 보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권력자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의 모습이 낯설지 만은 않습니다. 춤추는 아이 앞에 침 흘리는 어른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이천년 전 타락한 왕궁의 밤이 낯설지 않습니다. 이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오늘밤도 수많은 유흥업소에서 승진을 위해, 계약 성사를 위해 춤추는 우리 아버지들과 내 인생 내가 산다며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추는 우리 어머니들과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클럽에서 춤추는 우리 아이들. 당신과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누구 앞에서 춤추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춤추고 있습니까?
오늘도 비 내리는 방주의 창 너머로, 어젯밤 게워 올린 토사물이 보이고, 지친 영혼의 남자와 여자, 아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돌아갑니다.
백남해 신부는 마산교구 소속으로 1992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사회사목 담당, 마산시장애인복지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창원시진해종합사회복지관장과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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