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 훼손 사건과 관련해 관계 당국과 책임자는 즉각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다시는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이미 성명을 통해서 분명하게 밝혔듯이 이는 가톨릭교회에 대한 “도전이며 폭거”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세속화된 다원주의 사회 안에서도 종교와 신앙이 지닌 사회적 중요성과 초월적 본질은 철저하게 존중돼야 하며, 근현대사의 격동을 지나온 우리 사회와 역사 안에서도 종교와 종교인들의 고유 영역은 존중받아왔다. 서슬 퍼렇던 독재 통치 아래에서도 비록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실정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억압을 받은 적은 있었지만 이번 사건처럼 종교적 상징과 신앙의 대상 자체에 대한 폭력을 이처럼 서슴치않고 행사한 적은 없었다.
성체는 그야말로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자 본질이다. 가톨릭 신앙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체는 인류를 위해서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상의 제사를 통해 내어주신 그분의 몸이다. 성체는 단지 하나의 종교적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신비로서 미사 안에서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다.
따라서 성체를 훼손하는 행위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을 십자가를 지고 오르실 때, 그분을 매질한 로마 병사들처럼 그분에게 침을 뱉고 모욕하고 채찍으로 때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노신부가 깨어진 성체 앞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폭력의 현장에서 또다시 아무런 죄없이 매질을 당하고 있다는 슬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성체 훼손의 과정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통해서 가감없이 기록됐다. 더 이상 이에 대한 변명이나 사실의 왜곡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단지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고 있는 동안 공권력이 보여준 폭압적인 대응의 모습들은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었다. 주교회의 정평위가 이미 성명을 통해 밝혔듯이, 한국 가톨릭교회는 지금까지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해왔으나, 이번 사태를 통해 더 이상의 자제는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우리는 즉각적인 책임자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 이를 위한 성의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경우 한국교회는 사안이 갖는 중대성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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