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십 년만의 더위니, 태어나서 처음 겪는 폭염이니, 또 대규모 정전 사태가 오면 어쩔 것인지, 으레 겪는 한여름 더위를 두고 쏟아내는 말들이 찜통더위를 부추기는 지경이다. 후끈한 더위를 조장하던 말까지 배낭에 챙겨 강으로 바다로 산으로 떠났는지 주말 도심의 거리는 모처럼 침묵 중이다.
부채질하던 길손의 푸념이 숨어드는 공원 그늘진 습지에는 한여름 침묵의 피정에 선 꽃이 있다. 선녀의 옥비녀를 닮은 하얀 옥잠화. 여름 내내 향기 없던 자리에 은은한 향내를 내리는 옥잠화는 말 없음으로 말을 다하는 대화법을 일러준다.
‘많은 것을 간결하게 말하고 알면서도 침묵하는 사람이 되어라.’(집회 32, 8)
식견이 얕고 공부가 부족해도 겨우 몇 구절 알고 나면 말로 펼치려는 세상이다. 홀로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손에 든 작은 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에 혼연히 빠져드는 주변이다. 조용히 듣는 일도 어려운 이때 옥잠화는 해가 뜨면 말이 샐까 입술뿐만 아니라 얼굴조차 야물게 닫아건다. 해 지면 피어나고 해 뜨면 살며시 입을 봉하는 함장(含章)의 꽃이다. 드러내지 않은 속을 온전하게 쌓은 후에야 제 몸을 여는 옥잠화는 그래서 더 귀하고 아름답다. 한의학계는 치매 치료와 예방에 옥잠화의 효과를 기대한다. 그러나 옥잠화의 진실은 고요한 침묵 속에 전하는 말이다.
“덥다 더워”를 외친들 더위가 쉬 물러가겠는가. 차라리 더위를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위를 초월하는 피서법을 숨어 피는 꽃 한 송이에서 찾을 일이다.
오늘도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옥잠화의 뜰로 발길을 돌린다. 작은 생명에서 찾는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신’ 한 분의 뜻이 바로 꽃에서 듣는 문향(聞香)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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