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띠는 2000년을 5년 앞으로 앞당겨 놓았다. 변화 무쌍하던 94년이 지나고 95년은 우리에게 무슨 레퍼터리를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어떻든 엄청난 격변기를 살고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것이다. 「변화」자체가 이 시대의 특징인듯 하다.
변화를 함축적으로 대변해준 용어로「신세대」를 들수 있다. 처음 이말이 나왔을 때 무슨 유행어 정도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신세대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인종이라고 까지 일컫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이 용어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중인 것은 아닌지 보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뜻이라고 보여진다. 천년 단위가 아닌 백년 단위로 바뀌는 마지막 세기였던 1900년을 전후해서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때 당연했던 댕기 머리를 지금 하고 다닌다면 미친사람 정도로 여길 것이다. 거꾸로 딸자식이 지금 서울 거리의 처녀처럼 차려입고 나다닌다면 그때의 부모들은 할복자살이라도 서슴지 않을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고보면 1세기 안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 일어났던 변화도 대단한데 지금 진행중인 변화와 어떻게 차별화되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그때의 변화는 각각의 문화권 안에서 개별적으로 천천히 그러나 거의 전 지구적으로 벌어지던 것이었다. 그래서 각 문화권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변화는 자기들만 겪는 것으로 여기기 쉬웠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지구촌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서로 소통하는 수단이 개인과 개인에 머무르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face to face communication)의 좁은 범위를 벗어난 것도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도 즉시로 알게 됐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그야말로 내 집 마당에서 벌어지는 것과 다를바 없다. 지금은 외국 여행도 쉬워져서 딴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지구가 내 이웃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고유의 관습이라는 말로 더이상 젊은이들을 설득시키기 힘들게 되었다.
우리의 규범은 절대적인 가치를 잃고 상대적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는 한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인간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성을 지니지 않으면 호소력이 떨어지게 된다. 더구나 영상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문자(文字)의 추상성으로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었던 것들도 적나라하게 다 보여준다.
미국영화에 익숙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영화를 통해 이야기 줄거리 이외의 것들도 많이 배울 것 같다. 한 예로 인간관계가 수직적인 위계질서 보다 수평적인 친구 개념을 보여주는 여러 장면들은 당연했던 우리의 예의범절에 대해 의문을 품게 했을 수 있다.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꿈꾸어 보는, 한국인이라면 기상천외한 발상도 가능하다. 남녀 사이의 관계도 예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는 것 같다.
변화가 피부에 생생하게 와닿는 것은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했던 것들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징후들을 열거하자면 모두다 할말이 많은듯 하다. 『요즈음 젊은 애들은…하다』라는 빈칸을 채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드물 것으로 안다. 이런 일상적인 것 외에도 컴퓨터 등 새로운 문명의 이기는 사회를 전반적으로 바꾸어 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변화는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친구가 된 다해도 그것 때문에 당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관계가 인간관계라는 본질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구르는 바퀴가 아무리 빨리 돈다해도 바퀴의 중심은 그 모든 변화에서 초연한 채 변화의 기본 중심축이 되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1995년에도 많은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변화를 보여주는 수많은 현상들의 와중에서 변화의 핵이면서도 스스로 고요한 바퀴의 중심축을 찾는 작업이 이제는 시작될 때가 된것 같다. 외적 현상의 다양성과 복잡함에 당황하지 않는 성숙함이 21세기 새로운 문명의 특성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올해 부터는 이를 위한 성찰이 교회 안팎에서 이루어져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21세기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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