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
광복절을 며칠 앞둔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위해 여객선을 타고 부산항을 출발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순교자 현양회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기념성당과 일본의 국보 오우라성당, 교황청에서 공식 순례지로 지정한 니시자카 언덕과 우라카미성당 그리고 운젠성당과 지옥계곡 등을 방문하여 순교 성인들과 250년 동안 숨어 살며 신앙을 지켜온 가쿠레 기리스탄(잠복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해 묵상하고 나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번 성지순례는 또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기회가 됐다. 히로시마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해 당시 나가사키시 전체 인구 24만명 가운데 7만4천명이 즉사하고 또 다른 7만4천명이 부상했으며 아름답던 도시가 순식간에 폐허가 됐다.
당시 37세였던 방사선과 전문의 나가이 타카시 박사는 출근할 때 잘 다녀오라고 배웅을 했던 부인을 찾아 폐허를 헤매다가 잿더미 속에서 부인이 평소 지니고 있던 묵주가 불탄채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부인의 유해로 여겨지는 숯덩이를 안고 병원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나가이 박사는 그 자신도 폭격으로 중상을 입었으며 그 이전에 방사선 연구를 하다 걸린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지만 평화의 성자가 되어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했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한발의 원자폭탄이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찍게 되어 그 순간을 계기로 되살아난 오늘의 이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고 싶다. 원자폭탄은 나가사키에서 끝. 나가사키가 피리어드! 평화는 나가사키로부터!”-<평화탑>에서
나가이 박사가 그토록 염원했던 평화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그리고 피해자의 용서가 있을 때에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침략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전쟁 당사자로서 자행한 수많은 악행에 대해 솔직한 인정과 피해자들에 대해 진심이 담긴 사과 그리고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볼 수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무성의
대표적인 문제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무성의와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67주년 광복절 기념식 축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시 언급하고 일본 정부가 더 늦기 전에 위안부 문제의 매듭을 직접 풀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는 한국인과 결혼해서 한국에 사는 일본 여성들의 단체인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 회원 1천200여 명이 서울시청 앞 광장 등 전국 12곳에서 집회를 열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한·일 우호관계 정립을 촉구했다. 이들은 “한국에 와서 과거 역사를 알게 됐고 가장 큰 충격은 위안부 문제였다”며 “일본인을 대표해서 사죄드린다”고 했다. 이들은 또 일본 정부에 대해서 위안부 문제를 만천하에 밝히고 사죄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오히려 최근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 일본에 대한 강경 외교를 빌미 삼아 일부 각료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망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곳으로 민주당은 2009년 9월 집권 후 ‘8·15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중단했으나 이날 마쓰바라 진(松原仁) 국가공안위원장과 하타 유이치로(羽田雄一郞) 국토교통상이 참배를 강행하여 한국은 물론이고 북한과 중국, 대만 등 관련 국가들로부터 “재침 야망의 발로”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를 당한 주변국과 국민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은 행위”라는 비난을 받았다.
역사의 죄인 되지 말아야
일본은 과거사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양국의 진정한 우호 관계가 정립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피해자에 대해 합당한 사과와 보상을 함으로써 더 이상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태식(토마스) 회장은 1978년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에 입사, 경제부·정치부 기자로 활동했으며, 1981년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에 입사해 해외경제부 차장, 영문경제뉴스부 부장 등을 역임, 현재 연합뉴스 국제국 기획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 가톨릭신문·출판인협회 회장에 이어, 올해 2월부터 서울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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