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역린’이 있다. 용의 턱밑에 거슬러 난 비늘을 뜻하는 이 단어는 건드려서는 안 될 소중한 곳을 뜻하기도 한다. 그곳이 바로 용의 목숨을 좌우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린을 건드렸다는 것은 용의 죽음이나 건드린 이의 죽음을 의미한다.
지난 8일 제주 서귀포 강정마을에서 봉헌된 생명평화미사 중 성체가 짓밟히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소식은 곧 트위터를 비롯한 SNS를 통해 전국으로 전해졌고 본지에서도 19일자 1면과 2면에서 이 소식을 보도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소식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은 드물었다. 아니 솔직히 청년들 중에는 관심을 갖는 이들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의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미사를 왜 그곳에서 봉헌해서 성체가 훼손될 빌미를 제공했냐고 얘기할 수도 있고 성체가 훼손된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하고 물어볼 수도 있다. 전자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은 그 얘기를 통해 미사의 의미를 돌이켜볼 필요성을 느낄 것이고, 후자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은 성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구하고자 할 것이니 결과적으로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 사건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버리는 태도에 있다. 지금까지 모신 성체, 앞으로 모실 성체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성체가 짓밟힌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저 소식을 접하고 잠깐 화가 났을 뿐 그 뒤로 별다른 태도를 취하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러나 부끄럽다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성체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역린’과 같이 소중하다. 그러나 이런 성체가 짓밟혔음에도 침묵하는 우리를 보고 세상은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말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이 일의 심각성을 알 수가 없다.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성체는 단지 제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비극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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