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장안이나 아니 전국이 열병에 시달리고 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적어도 70여만명의 고3생과 재수생 내지 삼수생이 12년, 아니 18년의 긴긴 경쟁과 준비의 나날을 보내고 처절한 입시경쟁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도 입시과정이 복잡해졌다. 내신성적은 물론이고 얼마전에 시작한 수학능력시험에다가 이제 웬만한 대학은 또한 본고사까지 치루며 더구나 특차제도까지 도입됨으로써 삼중사중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차에 무난히 합격한 학생과 그 부모들은 기쁨과 희열속에서 연말을 즐겁게 보냈을 것이고 일부는 이미 원하는 대학의 합격통지를 받아 안도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반면 많은 학생과 가족들은 삐삐 등 최신 통신기기를 이용한 필사적인 눈치작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합격할수 없다고 포기해 버렸거나 낙방이라는 통보를 접하고 절망과 실의속에 울고있을 것이다. 이맘때면 어쩔수 없이 빚어지는 희비쌍곡선이요, 온나라가 온통 히스테리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 극도의 과열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이고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가 너무 경쟁적이고 성취지향적이 되어서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자유경쟁사회로 돌변한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과거 어느때보다 가장 중요한 경쟁의 수단으로서 손꼽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수험생들은 부모의 총수입보다도 더 많은 돈을 들려가면서 과외를 해왔고 부모는 기꺼이 또는 할수없이 어떻게 해서라도 고액과외비를 마련하였다. 학교선생은 학교선생대로 교장은 교장대로 일류대학에 몇명, 서울에 있는 대학에 몇명, 지방에 있는 대학에 몇명 등등, 합격한 학생수에 따라 그 학교의 명예와 질과 능력을 평가 받는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가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으로 전락되었다는 비판은 더이상 비판이 아니고 사실화 되었다. 과연 이경쟁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따지고 보면 많은 부모나 입시생들은 그저 경쟁의 소용돌이속에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는 불안 때문에 끌려가고 있는지 모른다. 경쟁의 목적은 다분히 근시안적이고 현실적이고 성취 위주다. 거기에는 학문의 추구는 물론, 인격의 도야, 인생관의 확립, 삶의 의미, 자기실현 등의 좀더 거시적이고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 어떤것도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30년간의 경제제일주의외 물질-황금만능주의 물결은 인간성과 대인관계의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사회의 가치관을 어느 구석엔가로 몰아 버리고 감각적이며 가시적인 상품의 진열과 외형적인 성장에 만족해 왔다. 성수대교의 붕괴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준다.
더큰 문제는 이 궁극적인 상품화이전 18여년 동안의 인격의 형성과정에서 과연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었겠는가 이다. 공부를 잘하면 버릇이 없어도 되고 모든 잘못이 용서되며, 주일미사 참례도 희생시켜도 무방한 것이다. 어렸을때 부터 어떻게 하면 번지르하고 멋있는 상품으로 만들어내는가가 우리나라 부모들의 통탄스러운 양육태도 이며 철학이다.이렇게 자라난 사람들의 성격을 에릭프롬은 「시장화 성격」(marketing perso-nality)이라고 이미 50여년전에 지적한바 있다.인격의 상품화,인간의 시장화,너무나 끔찍스러운 현상이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일은 별로 없는데 특이하게도 성전을 방문 하셨을때 상인들을 쫓아내시면서 크게 화를 내셨다는 기록이 있다 『상인과 환전상, 비둘기를 파는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그리고는 「내집은 기도의 집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구나』(마르코 11, 15 마태 21, 12~13)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은 거룩하고 숭고한 가치추구의 장(場)과 길(道)이 상품화되고 돈버는 수단으로 전락 되는것을 목격 하신것에 대한 드문 분노의 표출이었다.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인격을 성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성전에 우리 자녀를 창조해 주신 신의 뜻과 건전한 인격의 성장이 이루어 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어느틈인가 우리정신세계에 파고든 비인간화된 가치관의 냄새와 물결이 그성전을 더럽히지 않도록 보호해줄 의무가 있다.그 성전은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인간성의 근본적인 가치,이웃사랑에 대한 확신과 사랑의 치유적 힘에 대한 믿음으로 채워 줘야 할 것이며, 우리 자녀들의 인격과 마음이 이러한 덕목으로 꽉차여 졌을때 걷치례와 포장은 의미가 없어지고 우리는 더이상 무엇으로 포장 할까 안달 초조 하지 않아도 될것이다. 『사람이 온세상을 얻는다해도 제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마태 16, 26) 여기서 말씀하신 생명이란 단순한 생물학적인 목숨을 의미하기 보다는 인간존재의 의미,인간의 기본적 가치관을 말하는 것으로서 참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깨닫도록 도와주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아무리 많은 것을 전해 준다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라는 2천년전에 현대인들 에게 던지신 질문으로 받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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