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이곳은 본시 서민들이 보리, 채소, 땅콩, 꽃 등을 가꾸던 한강의 작은 섬이었다. 이 섬에 난초가 아주 만발하여 붙여진 이름이「난지도」(蘭之島)였다고 한다. 그런데 70년대 이후 들에서 부터 제방을 쌓아 연결하고서는 서울시민의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로 지정하게 되었다. 여기서 버려지는 쓰레기 가운데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분류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이들이 모여들면서 80년대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동안 매립된 쓰레기가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여러 개의 작은 산들을 이루게 되었으니 겉모습으로만 보면 이곳은 난지도(島)가 아니라 난지산(山)이다.
더 이상 쓰레기가 오지 않는 이곳에 살던 주민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많이 떠나 갔다. 서울시의 개발계획에 따라 아마도 한 두해 안에는 떠나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남은 주민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자 지난 가을에 수색본당의 협조를 얻어 「아기들의 집」에다 도시공소를 세웠다. 이는 빈민사목의 서부지역 복음화위원들이 복음 나누기 모임을 하면서 얻어낸 결론이었다. 가난한 사람들, 떠날사람들, 냉담하는신자들… 이렇게 사회ㆍ경제적으로 효용이 없어진 이들이라고 해서 교회마저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난 성탄절날 저녁, 그동안 주일마다 미사와 교리공부를 하면서 준비해 온 신자들 22명이 견진성사를 받던 그때, 고운 한복 차림으로 주교님의 손을 꼬옥 잡고 환히 웃으며 사진을 찍는 팔순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존재 가치보다 효용 가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믿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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