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많은 것들이 사회의 분위기와 함께 변하였지만 아직도 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려는 부모들의 가치관이다.
이 가치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그 방법적인 면에서는 더 극성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요즈음처럼 조기교육 바람이 일어나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자녀 교육을 하고 있기에 그 교육비를 제외하고 순전히 국민학교에서 부터 대학졸업 까지 들어가는 교육비가 적게는 5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들어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상이다.
여기다가 과외니 특별지도니 하다보면 그 숫자는 천문학적 숫자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막대한 돈을 지출하면서 까지, 심지어는 가산을 탕진할 정도로 까지 많은 교육비를 들여 대학을 보내지만 기이한 현상인지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학력 실업자」라는 신종단어가 나올 정도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심지어는 박사학위를 소지하고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백수」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 왜 우리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꼭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가? 그리고 왜 꼭 대학에 가려고 밤잠을 설치며 학생들은 입시 준비를 하는가? 진정으로 학문을 위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인가? 그리고 그 학문을 통하여 자신의 성숙과 삶의 발전에 토대로 삼기 위한 것인가?
우리 사회를 보자. 대학졸업자를 요구하는 대다수 기업의 사원 모집 광고, 그외에도 대학 졸업자를 요구하는 여러 기관이나 단체의 구인광고, 심지어는 신문 자투리에 나오는 결혼상담소의 광고 속에서도 대다수가 대학 졸업자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을 가야하는 이유가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은 곧 내가 살아가기 위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삶의 방편이 되어버렸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그리고 사회속에서 인정받고,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최소한의 간판이 대학의 졸업장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지 못하면 일단은 벌써 우리사회에서는 이류인생, 삶의 낙오자, 미래가 힘들어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버린다.
또한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남들이 다 대학을 가니 나의 자녀들 또한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고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은 자녀의 모습 보다는 사회에서 출세해 양복에 넥타이 맨 자녀의 모습을 더 보기 좋아하기에 생존경쟁에 승리하는 병사로서 만들기 위해서 맹목적으로라도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일반적인 가치관이다.
이러한 것은 순수해야 할 학문의 영역이 물질적인 가치관에 의해서 오염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한단편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실속에서 대대로 이어진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대학입시제도의 개선도 아니요, 교육정책의 개선도 아니다. 그것은 사회전반에 걸친 의식의 개혁과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정책적 배려를 통한 제도의 마련이라고 말하고 싶다.
곧 이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순수성의 회복이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사회 교리에 의한 인간 존엄성에 기반을 둔 노동과 직업에 대한 사회복지 정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은 진정한 학문의 장이 되게하고, 사회는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직업의 귀천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노동은 『창조주의 작업을 반영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실현시키며,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인간답게 되는 것(노동하는 인간 4,9)』으로 보아 노동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여 가장 보잘 것없는 업무 수행도 인간의 인격적 자아실현으로 인식하고 생활하는 기치관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을 인간의 의무와 권리로서 뿐만아니라 인간의 명예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과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며 그에 상응하는 대우에 의해서 존중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직업을 존중하고 고귀하게 생각해 주는 사회속에서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서구의 장인 정신이나 투철한 직업관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 한다.
그것은 단지 먼 나라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진정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그러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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