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받으라고 신나게 꿀꿀거리는 을해년 정초가 시작되었다. 한해를 어떻게 보내야할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한국 사람은 두번 가지는 셈이다. 두번을 생각해 보아도 우리에게 「변화」는 여전히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이제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없는것 같다. 다만 변해야하는 이유를 보다 근원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잡다한 사회적 변화만을 잘 쫓아간다고 해서 시대를 앞선다고 위안하기에는 벅차고 불안하며 피곤하고 때로는 위선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 진행되는 변화는 단순한 패션의 변화 정도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변화라는 인식이 식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다.
변화의 이유를 이해한다 해도 변화해 나아갈 방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 모델을 어디서 찾아야하는지 괴로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인간관계가 한국 역사에서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것들 투성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서에 당연했던 「상사와 부하」라는 직장의 인간관계는 연봉제도나 팀장제도로 무너지고 있다. 가정에서도 손님같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도 도대체 이해가 안가는 것들 뿐이다.
변화에 대한 이유와 방법에 대한 모색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답도 우리 동양의 철학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여겨진다. 사실 동양철학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접해온 생활철학은 유교에 편중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유교 중에서도 명분을 중시한 주자학에 치우쳐 있었다. 우리의 생존조건이 그럴 필요성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시대가 달라진 지금까지 주자학에 집착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선조들의 삶을 다시 면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이조시대를 산 전형적인 선비의 일상을 예로 들어보자. 관아에 나가 백성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사회적 활동과, 저녁을 먹은후 집집마다 걸려있던 한폭의 그림이나 서예를 대하면서 저절로 명상에 빠지던 생활은 당연한 일이어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유교(儒敎)와 도교(道敎)가 어우러져 있었다는 뜻이다.
유교와 도교의 공존관계는 실질적으로 동양의 문화를 버텨온 두개의 기둥이었다. 유가가 이조시대의 하드웨어를 담당한 사회의 전반적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도가는 그 속을 실질적으로 채워준 소프트웨어를 담당했다고 본다. 우리의 말에 서도(書道), 다도(茶道), 태권도(跆拳道)등 도(道)와 관련시킨 용어는 구체적으로 문화의 소프트웨어를 형성하는 이유와 방법을 함께 일러주는 것들이었다.
다만 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생존이 농업에 걸려있던 만큼, 사람들을 논에 묶어놓는 하드웨어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할 절대절명의 과제가 있었다. 볍씨를 뿌리고, 모를 내며, 피를 뽑고, 추수를 하기 위해 한곳에 많은 사람들을 묶어두는 것이 그 어는 가치보다도 우선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별나게 효(孝)가 강조된 집단주의 가치체계가 유교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사회로 돌입했다. 정보화사회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량있는 개인의 창의력이다. 그래서 생존의 원칙이 집단주의에서 우리에게 생소한 개인주의로 변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개인주의는 서양의 분자화된 고립된 개인주의가 아니다. 정보화사회의 개인주의는 상호간에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핵심을 꿰뚫는 유연성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현상의 다양한 변화의 요인들을 수용하면서, 현상적 변화의 핵심을 감잡을 수 있는 본질에 대한 감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조들이 생존문제로 한켠에 비껴놓았던 도(道)적 인생관에 대해 재고찰할 필요성을 느낀다. 왜냐하면 물담는 그릇이라는 현상의 다양성과 본질로서의 물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도가는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에 대한 철학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지만 변화의 주체인 수레바퀴의 중심축과 움직임의 객체인 바퀴테라는 또다른 비유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우리의 민간설화에 도가와 깊은 연관이 있는 선승(禪僧)들의 기담(奇譚)이 풍부한것도 이런 열린 체계에 대한 이해가 나름대로 깊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우리의 선승적 관점에서 볼때,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는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선심쓰듯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 놓고 우리의 신세대가 어느 나라보다도 더 기발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철학을 개발해 주어야하지 않을까? 산업이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문화전쟁으로 나아가는 지금, 신세대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것이 벌써 개인과 국가 경쟁력의 열쇠로 작용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도(道:길)는 말 그대로 길을 걷는 과정의 「변화」그 자체를 싸안으면서 동시에 변화의 중심축에서 동요되지 않는 역설을 담고있다. 생존문제가 해결될 21세기의 동양 그중에서도 극동은 유교에서 도교 쪽으로 문화의 축이 바뀌어 갈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이러한 동양의 변화는, 이원론(二元論)에 시달린 서양이 갈구하는 지혜를 니체의 초인(超人)이 아니 도인(道人)으로 답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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