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은 과연 인물이다. 작년 국내 한 시사주간지에 의해 한국을 움직이는 중요한 인물 가운데서도 수위권을 차지하는 인물로 보도된 바 있는 김수환 추기경, 그분의 무게가 새삼 느껴지는 최근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 희망 의사가 본보 신년호 첫 머리를 장식한 이래 그 여파가 꼬리를 물고 있는 현상도 바로 그분의 무게를 거듭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나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지 꼭50주년이 되는 해가 아닌가. 광복 50주년 해에 그렇지 않아도 통일문제가 자연스럽게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속에서 김추기경의 방북희망의사는 흔히 말하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이 선선한 충격은 첫 보도 이래 한달이 넘는 최근까지 외신(外信)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내용이 역수입돼 보도되는 아이러니를 낳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방북 희망 보도는 일반 언론들이 「방북희망」을 「가겠다」는 의미로 발전시키면서 날개를 달아 버렸다.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김추기경의 방북희망 소식은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남북 관련기사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된 것이다.
『만일 통일에 도움이 되고 북한 신자들이 원한다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이 소박한 희망은 김추기경이라는 인물의 무게에 따라 엄청난 비중이 실려 버린 것이다.
언론은 속성상 그렇다치고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열려있음」을 자처하는 현실속에서 김추기경의 방북희망기사를 놓고 보인 관련부처들의 반응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불에 덴듯한 이들의 놀람은 통일문제 접근에 있어 아직도 확실한 준거틀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 때문이다.
당황과 놀라움이 역력한 이들 관련단체들의 모습속에서 아직도 험하고 또 멀기만한 우리의 통일 준비를 읽었다면 지나친 발전일까?
광복 50주년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북한을 방문하고 싶은 김추기경의 희망은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놀라움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반갑고 고마운 일이어야 마땅할수도 있다.
교구장 서리로서 교구민과 신자들을 만나고 싶은 소망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 일 것이다.
김추기경의 방북희망이 통일논의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음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경제교류에 국한하면서 숨통을 트긴했지만 마치 금기처럼 여겨져왔던 방북문제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면서 통일논의의 물꼬를 틔워준 셈이기 때문이다. 우선 교회안에서 광복 50주년과 관련, 활발한 논의와 접근을 유발시켰다는 사실이 그 첫번째 수확이다.
통일을 위해선 만나야하고 그 만남의 폭은 넓을수록 좋다. 어떤 분야에서건 우리는 서로가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나가야 하기 대문이다. 불신과 미움, 적대감의 골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남과 북의 현실속에서 종교의 역할은 그 어느분야보다 중요할 수가 있다.
종교의 속성상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선행되어야할 상호 신뢰회복에 있어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일에 앞서 지난 50여년간 축적 증폭시켜온 이질감 적대감 증오심 등을 희석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당국은 종교를 포함 복지문화적 접근과 교류가 통일의 길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 가장 좋은 여건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자체의 준비다. 그것은 모든면에서 우월한 입장에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상황이 아직 통일을 받아들일 여건이 못된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일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극도의 이기심과 비인간적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통일이라는 막중한 사명을 완수하기위해 아직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모든 인간이 존중받고 정의가 실현되는 좋은 나라, 좋은 사람이 되는것, 그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정부, 사회, 국민 모두가 반드시 선택해 야할 몫이다. 그 일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이 뒷받침 될때만이 가능하다.
김추기경의 방북 희망은 통일과 관련한 우리 교회의 잠재의식을 불러 일으키는데 결정적 동기를 마련해주었다. 모처럼 불이 지펴진 교회의 통일노력은 통일에 앞서 선행되어야만 하는 이같은 조건들을 만들어 나가는 일로 시작하면 좋을듯 싶다.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은 금새 그치고 곧 녹는다. 자잘하게 내릴듯 말듯 내리는 작은 눈송이는 쉽사리 녹지않고 쌓이게 마련이다. 우리의 통일 노력은 쏟아지다 금방 녹아버리는 함박눈이 아니라 소복이 쌓이는 작은 눈 (雪) 의 마음으로 시작해야만 한다. 욕심만 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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