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대학입시 때가 되면 날씨가 추워지곤 했었다. 이번에도 우리학교의 입시본고사를 치른 날은 역시 추운 날씨었다. 학부모들이 실내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떨며 자기 아이들이 시험 잘 치르기를 비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시험감독의 임무를 수행했다. 대학생이 될 아이들을 시험장에까지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해야하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본고사의 과목은 세가지에 불과하지만 5시간 감독은 참으로 지루한 시간이었다.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 긴 시간동안 내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았다.
잘 알려진 대로 대학입학전형을 위한 자료로는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이 있다. 많은 대학에서는 이 두가지 자료를 가지고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그런데 소위 명문대학이라고 하는 몇몇 학교에서는 각기 본고사라는 것을 치르고 있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결과만 가지고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이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학업성적보다도 5시간 동안 치르는 3과목의 성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세이다.
입학 전형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내신성적, 수학능력시험, 본고사의 결과들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내신성적이 좋은 사람은 수학능력시험결과도 좋고 본고사의 결과도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수학능력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은 본고사의 성적도 좋다는 것 또한 일반적인 경향이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높은 학생이 본고사를 잘 못치르거나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낮은 학생이 본고사를 잘 치르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내신성적이 낮은데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의 성적이 높은 학생은 일부특수고등학교의 일부 학생들이나 고액과외를 한 일부 학생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본고사를 치르는 것이 이들 일부 학생들을 위한 행사인 셈이 된다.
입학전형 자료의 분석 결과를 보면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 결과만 가지고도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내신성적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흔히 고등학교 교육의 파행적 현상을 지적한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나 이와 관련된 일부 교사들의 불성실이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이미 옛날 일이거나 있어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것을 가지고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을 못믿는다면 그것은 부분을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내신성적을 믿어주고 그것을 그만큼 중요하게 고려한다면 내신성적의 신빙성은 그만큼 더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단지 내신성적을 현재와 같이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이수하는 모든 과목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내신성적을 산출할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전공분야에 따라 과목의 비중을 조정하여 내신성적을 산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수학과 자연과학 과목들의 비중을 크게 하고,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국어나 외국어, 사회과학 과목들의 비중을 크게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내신성적을 토대로 대학에서 융통성있게 내신성적을 재 조정하여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가 평준화된 지역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으며 평준화 되어있다 해도 고등학교의 질적 차이가 있으므로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수학능력시험의 결과를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의 비중을 어떻게할 것인지는 대학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입 본고사가 고등학교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본고사가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는 본고사의 대상이 되는 과목만을 중요하게 취급할 것이고 고등학교는 입시학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다. 본고사의 과목을 중심으로 한 고액과외는 더욱 성행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이 소위 명문대학에 가고 싶어하고 명문대학에서 본고사를 치르는 한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입시학원만 더욱 성행하게 될 것이다. 내신성적을 고려하는 데에는 문제점이 없지는 않다. 후에 면접과정에서 안 일이지만 일부 특수고등학교 학생들은 3학년때 학교를 자퇴하고 대입검정고시를 치는 예가 많았다. 내신성적을 잘 받아보려는 계산에서이다. 학교에서도 그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이,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그러한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수학능력 시험의 결과를 더 중요하게 고려해주면 되지 않을까?
대입본고사는 여러면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그것을 강행하는 것은 대학들의 독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내신성적과 수학능력시험만으로도 얼마든지 유능한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는데 왜 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자원을 낭비해가며 본고사를 치르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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