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형아,
네가 떠나던 그 새벽에 우리 동네에는 뜬금없이 하얀눈이 내리길래 「혹시나 네가-」 하는 마음 덜컥했더니만,결국 하늘 나라에 가서 잘 도착했다는 소식인 양 어쩌면 그토록 하얀 눈가루를 뿌렸더구나.
순형아,
솔직히 이제는 눈물도 말라 버렸단다.
사제가 되기 위해 소신학교때부터 13년이라는 긴세월을 우리 함께 먹고 자고 공부했던 그 긴 세월, 꼭이나 그 만큼만을 어쩌면 너는 고통과 싸우며 13년을 또 그렇게 보내 버렸더구나.
『순형아,우리가 잘 못 살으니까 네가 그렇게 고통으로 우리 대신 보속하고 있자?』
긴 세월 고통에만 시달려 막대기에 종이 감아 놓은 듯,말라 버릴대로 말라 버렸던 네 손목을 잡고 펑펑 울때,까맣게 타버린 입술을 더듬거리며 너는 말했지.
『주노야,나 우리 동창 신부들 잘 살라고 맨날 기도해 왔어. 그런데 요즈음은 묵주알 굴리기도 힘이 들어. 주의 기도 한 번 하기도 왜 이렇게 힘이 드냐. 그런데 주교님께서 그냥 아버지,아버지라고 부르기만 해도 된다고 하셔서 지금은 나 너희들 위해서 그냥 아버지,아버지 하고만 있다. 미안하다』
야,임마-. 네가 미안하기는 왜 미안했더냐.
부모떠나고,형제 떠나고 신부인생 보따리 함께 거들어 들고 가던 우리들이 아니더냐. 그래서 부모보다 형제보다 더 끈끈한 사제의 정으로 사는 우리들이 아니 더냐.
진달래 마을에서 어느날, 고기가 먹고 싶다고,고기 한 번 사달라고 우리에게 애걸하길래 의사 몰래 개장국 함께 맛있게 먹더니만,어찌된 일인지 그 날 새벽부 터 너는 시뻘건 피를 토하고…. 제기랄 자슥아, 그런 너를 대복이와 함께 업어다가 병원에 눕히고 죽을 죄인인양 밤새도록 울먹이며 한밤을 꼬박 새웠었어.
네가 그 밤새 토했던 핏덩이가 한 대야는 되더라.
순형아,
아~이제는 그런 붉은 피를 토하는 고통은 다시 없기를 바란다. 넌 별명이 털보라서 턱수염 하루만 안 깍으면 얼굴이 까매. 그날따라 수염도 안깍은 턱이며 입술에 핏자국도 못 지운채,『나 이제는 틀렸다. 야,종부성사 주라. 너희들 열심히 살아라…』
그 주제에 맨날 맥없이 웃곤 하던 그 순한 웃음을 웃으며 마지막 성사틀 청하던 그 밤이 그토록 괴롭게 슬펐던 이유는,그렇지 않니? 어찌 우리 같이 그 고생 고생해서 함께 신부가 되었는데 내가 너에게 종부성사를 주어야 되었느냐 말이다. 그래도… 그래도 너희들은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바래 주던 너의 그 고마운 말…. 넌 우리가슴에 변하지 않는 비석 하나를 세운거였어.
녀석아,우리 동창들 그래도 서로 잊지않고 진달래 마을 찾아가 널 만날 때마다 비짝마른 그 주제에 『나 요담에 이 병 나으면 어느 본당으로 인사발령 받으면 좋겠냐』고 물으며,늘 언제나 본당 신부로 발령나는 그 희망만은 단 한 번도 버리지 못하고 그토록 그토록 바라고 바라더니만,그래 너 임마,결국 천국 하늘 나라에 발령 났나보구나.
순형아,잘 가거라.
너는 우리에게 정말 잘 해 줬다.
그 긴 세월의 고통은 정말 남아있는 우리틀을 위한 위대한 희생이요,속 깊은 보속이었구나.
맨날 맨날 교구 위해,우리 위해,동료사제 위해서 걱정해 주고 기도해주고…. 그 고통을 그렇게 우리 위해 희생으로 바쳐 살던 네 고통의 생애가 이제는 눈물 겹도록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
우리 동창들은 살면서 본당일에 괴로우면 널 찾았고,뭔가 고민스러울 때에도 널 찾아 성사도 보고,위로도 받고,기도도 청하고 했었는데. 아~이제는 우리들 삶에 커다란 의지를 잃어버린 셈이구나.
순형아,
우리가 사제가 된 지 어언 18년이 되었다. 그 18년 중에 너는 13년을 오로지 고통과 싸우면서 지냈다니 지독도 하구나.
우리 사제들이 미사 때 입는 제의 등쪽의 십자가는 신자들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것이고, 가슴쪽의 십자가는 사제 자신의 십자가라며?
그래,너는 그 두 개의 무거운 의미의 십자가를 한평생 힘겹게 힘겹게 짊어지고 살아 온 셈이더니 야,그 제의 입고 두눈 감고있던 어제의 네 모습을 보니 그래 사제란 두 눈 감고 죽는 그 순간 까지도 그 두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사실이 새롭더구나. 아니 제의를 입고 누워있던 너를 보니 저 하늘나라에까지도 그 두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게 사제인지도 몰라.
순형아,
그래서 그런지 너를 매번 만날 때마다 넌 성인이 되어 가더라.
고통과 만남속에서 네 얼굴은 점점 더 빛이 나더라.
그 십자가의 의미를 너는 온전히 깨달은 성인 같더라.
이제라도 본 고향에 가서 하느님 앞에 그 두 십자가를 내려 놓거라.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걱정하지 말아라. 신부가 아무리 부모를 떠났다 해도 우리가 틈틈이 돌보아 드리마. 이제는 그저 하느님 품안에서 이제라도 몸 좀 건강하게 편히 쉬거라.
하느님 아버지,
당신은 참으로 무심도 하더이다. 당신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하더이다. 당신을 위한답시고 비천한 인생 전체를 당신께 온전히 드리려고 그토록 발버둥치던 한 사제를 그렇게 긴 고통으로만 달구고 달구더니만 이렇게 데려 가시는가- 하고 당신이 참으로 원망스럽기도 하더이다.
그러나 당신의 그 속 깊고 깊은 뜻은 이 한 사제의 고통을 통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주려고 하셨는지,이제는 그것을 헤아려야 할때 임을 알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이제는 정말 편히 쉬게 해 주십시오.
우리 동창 소순형 벨라도 신부가 당신 품안에서 영원히 편안히 쉬게 해 주십시오.
순형아 잘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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