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체 하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한다. 우리 주위에는 입만 열었다 하면 자기자랑만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랑의 내용에는 학력과 금력과 권력 그리고 자기 조상까지도 동원이 된다. 잘난체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랑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데도 떠벌이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실제로 많은 능력도 있고 남이 봐도 자랑할만한 사람이 자랑하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가소롭거나 불쌍하게 느껴지고 후자는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 주위에는 자존심이 높아 조그만 일에도 얼굴이 벌게지며 쉽게 마음을 상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체면에 매우 민감한 것이다. 조금만 대우를 못 받아도 서운해하고 화내며 무시당할까봐 걱정이다. 이렇게 잘난 체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호되게 질책하셨는데 특히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 주기를 좋아한다』(마태 23, 6~7)
잘난 체와 관련된 다른 표현으로 사람들은 흔히 『자기 잘난 멋에 산다』는 것이 있다. 이 표현은 잘난체, 잘난척 한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좀더 내면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한다는 자신감의 상태를 얘기한다. 실제적으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자기가 하는 일이 인정과 칭찬을 받고 또 자기 판단에도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신이 나고 일할 의욕이 생긴다.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성당의 어떤 직책을 맡았을땐 열심히 일하다가 그러한 직책이 끝나고 나면 주일 미사도 제대로 참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은 드러나 보이는 직위에 있을때는 신나서 일하고 그런 자리에서 물러나면 의욕을 잃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자기 잘난 멋이란 우리가 의욕적으로 생활해 나가는데 필요한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자기 잘난 멋이나 잘난체 하는 것들을 일컬어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에서는 자기애(自己愛 narcis-sism)라고 한다. 자기애의 어원은 나르씨서스(Nar-cissus)란 젊은 이가 물에 비쳐진 자신과 사랑에 빠진다는 희랍신화에서 유래한다. 이 자기애적인 욕구와 태도는 우리누구에게나 있는 것인데 역시 어렸을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한 두살의 유아기에 우리는 부모로부터 무조건 귀여움과 사랑, 그리고 최고의 대우를 받음으로써 자기 최고의 느낌과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수 있다는 과대 망상적 자기애에 빠진다. 그러나 두세살 지나서부터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되고 자기 맘대로 할 수 없고 자기만이 최고가 아니며 참아야 될때도 있고 또 포기해야 될 때도 있다는 것을 배우면서 자기애의 개념이 축소 현실화 된다. 그런데 부모가 유아기 이후 까지도 과잉보호하며 계속 네가 최고고 너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면 유아기의 자기애적인 태도와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자기과시적이고 과대망상적 자기 최고 의식이 계속되어 그렇지 못하면「체면 손상」이니 「자존심」을 상하느니 크게 분노하고 실망하게 된다. 한편 부모로 부터의 적절한 칭찬과 적절한 훈육을 경험한 아들에 있어서는 자기애가 자신감 자아존중감의 기초가 되며 이것이 또한 나중에 자기 주장과 추진력으로 변모하고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과 동기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 『너희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 11~12)라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높이고 보람을 느끼려는 이기심과 이타심은 같은 동전의 양면일 뿐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타심은 이기심보다 훨씬 낫다. 왜냐 하면 이타적인 행동은 남에게도 도움이 되고 자기애의 만족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가가 마치 국민과 공익만을 위하여 일한다는 구호와 행동에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성공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은 자기애적인 요소가 들어있으며 학자가 열심히 학문에 몰입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것도 학구적 노력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역시 그분야에서 최고 권위, 개척자라는 명예와 능력의 과시라는 자기애적인 요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 행동이 얼마나 이타적이며 희생적이고 봉사적인 동기에 의한 것인지 또 얼마나 가려진 이기심과 자기애적인 동기에 의한 것인지 부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기애적인 것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자기애의 외적표현이 과장되면 「잘난 체」요 적당하면 자기 PR(선전)내지 자기 주장이다. 자기애의 내면적 수용이 「잘난 멋」인데 지나치면 자기도취 유아독존이 되며 적당하면 자신감·자아존중이 된다. 따라서 자기애적 요소는 누구에게나 있고 우리 심리구조의 일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적당량의 자기애적인 요소는 우리에게 활력을 주고 성취 동기가 되며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순수히 이타적이며 완벽히 희생적이고 철저히 자기 부정적인 삶은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고 오래 계속 될 수도 없다. 우리속의 자기애적인 요소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적당량의 충족을 허용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매우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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