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사회는 서구문화로부터 많은 것들을 받아들였고 또한 그것을 통해 발전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서구 문화에 있어서도 그 원리나 그 문화의 결실이 있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이나 철학, 그리고 그 근본바탕에 대해서는 모른체 그저 그 문화가 만들어낸 결실에 대한 모방과 외형적인 것의 답습만을 해왔기에 오늘날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들을 도처에서 볼수 있는 것 같다.
양복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자동차가 무엇인지도 모른체 자동차를 타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체 정치를 하고 살다보니, 등산을 가면서도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에 운동화를 신기도 하고,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그냥 달리다 보니 교통사고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나라가 되었고 민주주의 흉내만 내다보니 서구의 개인 인격의 존중이 우리사회에서는 이기주의가 되었고, 정치 또한 역사 속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한국은 자동차는 잘 만들지만 정치는 아직 후진국 수준』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공산주의 치하에서 낡은 차로 시속 80㎞이하에 익숙해 있던 동독인들이 독일이 통일된 후 서독에서 생산된 성능 좋은 차로 주의사항도 무시한채 고속도로를 무제한으로 달리다 빠른 속도에 익숙치 못해 많은 사고를 당했던 동독인들의 모습에 비유할 수 있는 것 같다.
새해들어 나라 안을 뒤숭숭하게 만드는 것이 정당내의 갈등과 신당 창당, 그리고 정치가들의 수 싸움이다. 더군다나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이루어지는 지방자치단체당 선거 등으로 해서 나라 안이 온통 난리다. 그래서 장관과 도지사가 교체되고 국회에서는 연일 당리당략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 높이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지금까지 권위와 권력욕에 사로잡혀 운신의 기회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무슨 기회를 포착한 듯이, 국민을 위한 정치, 국민을 위한 지방자치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볼모로 해서 권위와 권력을 향한 자기 야욕과 정당의 야욕을 채우려는 구태적인 행동을 하고 있기에 모두가 실망을 금할 길이 없는 것 같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권위와 권력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권위와 권력은 위엄과 지배의 상징이요, 독선과 아집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권위(auctoritas)의 참뜻은 augere(증가하다, 풍부하게 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권위는 그 적용을 받는 사람들의 풍요와 증진을 뜻하는 하나의 제도이다. 그래서 모든 사회는 구성원을 공익실현으로 이끄는 권위와 권력이 필요하다.
토마스 아퀴나스는『하나의 집합체는 한 사람이 나서서 전체의 복지를 볼 때만 하나의 사회로서 존립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집합체는 그자체가 많은 목표를 추구하나 한 사람은 하나의 목표를 추구한다(S.Th.I.96.4)』고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어떤 공동체가『각 사람이 제 의견만을 고집함으로써 파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권위가 필요하다(사목74)』고 하였다. 성서에서도 권위와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며, 권위를 가진 자들은 국민을 위한 종이자 심부름꾼이며(로마 13,1~7), 이 권위와 권력은 봉사정신에 의해서 행해져야함을(마르10,43~45) 말하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 사회교리도권위와 권력은 한인간의 우위성으로 이 우위성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개인적인 선과 또는 사회적 선을 위해 명령할 자격을 갖추며 인간으로 하여금 성숙과 충만한 인간성에 이르도록 돕는 것이며, 인간의 완성을 중재하며 개인적, 사회적 가치들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설정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울러 권위와 권력은 공동체의 질서를 확고히 함으로써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개발과 진보를 위한 좋은 조건들을 조성함으로써 공동선에 봉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권위와 권력은『기계적 폭군적인 형태로써가 아니라 자유와 책임의식에 뿌리박은 도덕적 힘으로써(사목74)』국민을 위한 복지와 공동선을 향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권위와 권력의 보유자는 국가와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하고 공정한 사회질서와 개별 시민의 사적 권리를 존중하며 사회정의의 실현과 윤리적 가치와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인간다운 사회 조성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다.
참다운 권위와 권력에 의한 인간 존엄의 사회는 선진화된 서구 민주주의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충효를 바탕으로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삼아 서로 존경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왔던 우리 민족에게도 가능한 현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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