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이 한 이야기는 배꼽티 이상으로 어른들을 놀라게 할것 같다. 그는 모교에서 강의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낯이 뜨거워 눈을 어디다 둬야할 지 모르는 난처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이야기인즉슨 학교에서 벌건 대낮에 그것도 모두가 다 볼 수 있는 장소에서 한 커플이 키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작인 것은 그의 친구인 교수가 요새 애들은 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 것이다.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으로 자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무의식 속에「남녀칠세 부동석」을 꼽는 어른들은 요새 애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는 풍속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그들에게 이들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 무리일까.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어지럼증이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정신을 못차리기는 신세대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읽어보면 같은 나이에도 엄청난 세대차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한다. 전공때문에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예로 들어 영상을 강의하는 일이 많이 있다. 동일한 영화도 학생에 따라서 시각차는 극에서 극을 달린다. 첨단의 사고방식이 있는가하면 지금이 19세기인지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남학생의 경우 여학생보다도 더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
다니엘 벨은 이런 세태를 예견했음인지 20세기 후반부를 탈 윤리의 시대로 칭했다. 그는 인류 역사에서 19세기는 자유를 위한 시대이며, 20세기는 해방을 위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탈윤리에 대한 논의는 그러니까 다분히 해방의 개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예를 든 사랑하는 남녀의 애정 표현도 그러면 해방과 관련시켜서 볼 수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Yes」로 나온다. 어떤 행위에 대한 사회의 가치판단기준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기호(code)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같은 한국사람이 위의 장면을 서양영화에서 봤다면, 또 외국여행길에서 봤다면 그처럼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옳다고 합의한 의견일 뿐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도 불과 1백년전과 지금 사이에 보여지는 풍습과 세속의 차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지구가 통신과 운송의 발달로 하나의 촌락으로 변해가는 지금은 문화적 차이가 절대적일 수 없는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는 가일층 빨라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가톨릭은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시점에 온 듯하다.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이 시대의 인간이 추구하는 영성에 대한 답을 제대로 내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서양처럼 노인들만 몇몇이 모인 황량한 장소로 변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자유와 해방이 지구적 차원에서 삶의 기본이 될 확률이 크다고 보는 낙관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인간의 해방에 관련된 일상의 삶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까. 과연 삶의 외향적인 표현 방식에 대한 절대적인 내면의 잣대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하기는 같은 행동도 남성과 여성에 따라 달라지는 이중척도가 아직도 당연시 된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성에 대해서는 가장 완고해서 남자가 외도하는 것은 남성적이지만 여성의 경우 치명적인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여성해방운동을 성의 해방으로 직결시키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사회적 규약을 창출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성에 관련된 개념의 변화가 가장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건전한 성윤리의식에 대해 심각하게 성찰해야할 시점인 것은 분명하다.
탈윤리의 시대만 윤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이 무서워서 형식적으로 지켜지던 윤리가 자신의 내면에서 책임질 수 있는 참다운 윤리로 바뀌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위계질서에 꿰어맞추지 않으면 소외되기 때문에 역할병(役割病)에 걸려 억압적으로 작용되는 윤리가 아닌, 서로 인간으로 만나는 윤리를 구현하자는 반어법(反語法)적 표현일 것이다. 그러니까 탈윤리는 진정한 윤리를 위한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교회는 인간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탈윤리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탈윤리로 식별할 수 있는 혜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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