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하나 깨끗한 석양무렵, 이번에 세례받는 교우에게 주려고 명동의 성바오로 서원에서「성채」라는 책을 샀는데 포장을 뜯으니 거기서「빛두레」(제185호) 라는 팜플렛이 나왔다.
기쁜 마음으로 읽고 있던 나는 끌 페이지를 읽고 나서 가슴섬뜩한 혼란을 느꼈다. 거기에는「현양아, 네가 홍이 보단 낫구나」라는 제하의 글이 있었다.
모든 종교중에서도 유일하게 잡음과 편가름이 없고 공동체안에서 소리없이 봉사하는 교파로 한점의 의심도 없이 믿어온 가톨릭인데 개신교나 불교계에서의 종파싸움같은 느낌을 이글을 통해 언뜻 받았다면 내 신심이 얕아서일까?
지존파「김현양」하면 우리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소각로」를 연상시키는데 그가 사형선고틀 받고 이제 죄를 참회하고 인간의「성선설」을 증명하듯 하느님앞에「꼬꾸라졌다」고 해서,『내 아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한 가장의 피맺힌 절규도 아랑곳 없이 인면수심의 얼굴로 빙글거리던 그 모습들이 우리 뇌리에서 사라질 것인가?
모든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잡히지 않았다면 또 극형을 선고 받지 않았어도 참회의 눈물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앞설 만큼 아직 우리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인간적인 동정심이 생기는 것도 이해하고 사회의 부분적인 책임도 통감하지만 그렇다고 한 성직자를 그들과 비교하여 그들보다 못하다고 지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주님을 위해 외롭고 험한 길을 함께 가는 성직자들의 글이므로 더욱 놀랍다. 물론「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은 백번 옳지만 우리는 법치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므로 무슨 죄를 짓고도 참회의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용서해 줄수는 없다.
그들은 조용히 죄값을 받으므로써 더 인간적으로 세인의 눈에 비칠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아름답게 「세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오죽했으면 입시생들에게 이념각서를 요구했을까 싶은 성직자는「무지의 신념으로 타인을 심판하는자, 사상의 왜곡과 적개심에로 인도하는 사람」으로「바리사이파」취급을 하는지….
이 시점에서 평범한 신자인 나는 아무쪽도 편들고 싶지않다. 다만 우리 어리석은 양들은 색깔이 뚜렷한, 그래서 고고한, 대화를 모르는 목자들을 쳐다만 보다가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 되지나 않을까하며 서글픈 침묵에 잠길 뿐이다.
지금 한국 가톨릭교회는 침체에서 벗어나 힘찬 도약을 할때인데 서로에게 도움이 안되는 이런일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유엔에서「관용의 해」로 정했다는데 용서보다 더 크고 포괄적인 뜻이 담겼다는「관용」을 성직자들이 솔선수범해주실수는 없을까?
교파를 초월해서 공동체를 이룬다는 마당에 교회안의 잡음은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