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나의 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중의 하나는 국내외에서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고 있는 본인들의 고통이야 오죽하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10년 가까이 고생을 해가며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막상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시간 강사로 돌아다녀 보아도 피곤하기만 할뿐 호구지책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이들을 거느린 가장들도 많다.
그들이 외국에 유학을 가겠다고 했을 때 서슴없이 추천서를 써주곤 했다. 모두 나름대로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공부하고 오면 모두 학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또 국내에서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적극적으로 유학을 권장하기도 했다. 오늘날 이와 같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난 날 내가 한 일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제자들에게 미안한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남에게 별로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으면서 사는 나의 생활이지만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서는 예외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추천에도 써주고 부탁도 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 보아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제자들이 채용이 안되었다는 소식을 접 할 때마다 나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도 외국에서 공부한 제자들은 더러 일자리를 얻기도 한다. 그럴 땐 내 일처럼 기쁘다.
그러나 국내에서 공부한 제자들은 일자리를 얻기가 더욱 어렵다. 그들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경쟁력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기 때문인 모양이다. 그 결과 본의 아니게 국내박사를 차별한다는 원성을 듣기도 한다. 여자 박사들의 경우에는 취업이 더욱 어렵다. 공식적으로는 말을 못하면서도 뒷얘기를 들어보면 다 좋은데 여자라서 안되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남녀차별의식이 전문직의 경우에도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학과의 출신만 하더라도 일자리를 찾고 있는 박사들이 20명쯤 된다. 우리나라 사회학 분야 전체를 놓고 보면 아마 그런 사람들이 50명이 넘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학회 회원 수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러한 고급인력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일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고학력 실업문제는 물론 사회학 분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의 사정은 잘 모르기는 하지만 역시 박사들의 취업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듣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학 분야는 가장 심각한 취업난을 겪고 있다.
이렇게 고학력 실업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은 물론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학은 하나의 기초 사회과학이기 때문에 사회학자들은 대학이외에서는 별로 갈데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니 사회학자들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종합대학이라고 하면서도 사회학과가 없는 곳이 허다하다. 우리나라의 그 많은 대학 가운데에서 사회학과가 설치된 곳은 30여개에 불과하다. 어떤 대학에서는 사회학과를 설치하려해도 교육부 당국에서 인가를 해 주지 않는다. 소위대학이라는 간판을 내 걸고 있으면서 기초 사회과학의 하나인 사회학 강좌를 설치하지 않고 있는 대학도 허다하다.
사회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대학에도 교수진의 수를 보면 외국의 대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 사립대학들은 최소의 교수진으로 과의 운영을 도모하고 있다. 국립대학들도 교수 정원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래 가지고 어떻게 세계의 대학과 경쟁을 하겠는가?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학문간의 장벽이 너무 확고하여 인력의 활용에 융통성이 없다. 외국의 경우에는 경영대학원, 행정대학원, 사회복지 대학원, 교육 대학원 같은데에서 관련 분야를 전공한 사회학자들을 많이 채용하고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예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의 수요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들은 사회학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어느정도 비슷하게 존재한다. 많은 노력과 투자로 길러 놓은 고급인력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문제만도 아니고 개인들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각 분야에서 고급인력의 수요를 창출하지 못한데 대해서는 그 분야의 기성학자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책임은 교육정책을 담당했던 교육당국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사회의 수요에 맞지 않는 많은 인려을 길러낸 것은 근본적으로 교육정책의 마비에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고학력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도 교육당국에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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