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나누어 먹어야 할 과자는 점점 더 작아지는데 인간은 점점 더 많아진다. 이와 같은 상황 안에서는 폭력을 피할 수 없다. 즉 타인의 객관적으로 적이다. 서로를 밟고 오르려 하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직접적이며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과자는 그만큼 줄어들게 되고, 마침내 뱀은 제 꼬리는 물고 만다. 지금 지구 안에는 50억에 달하는 사냥꾼들이 살고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는가?
마사노부 후꾸오까는 원시자연과 화학농업 사이에 원시농업 혹은 영구경작이라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자연을 힘을 최대한도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면 종종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채소나 과일의 싹에 이롭도록 자연을 섬세하게 자극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나는 밭을 갈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소!
- 나는 풀을 뽑지 않을 수 있는가?
그렇소!
- 그런데도 그것은 자라 나는가?
그렇소!
마사노부 후꾸오까의 주장과 방법중의 하나는 흙에서 생산해 낸 일부를 흙에게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에 가장 가능한 형태로 나아가기 위해서 밭에 씨를 뿌려놓고 짚으로 덮은 다음 닭이나 오리 몇 마리를 풀어놓으면 닭똥으로 인해 며칠안에 그 짚은 썩게 된다. 해가 바뀌어감에 따라 오직 그 방법만을 실천했던 그 밭은 점점 더 비옥하게 변하고, 마침내는 집약적 화학농업의 수확고에 비교할 수 있는 수확의 가장 적합한 상태로 된다. 이렇게 간단한데 사람들은 어째서 그러한 방법을 실행하지 않는가? 이는 너무 단순해서 이익의 집중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비록 단장에는 비현실적이라고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인간의 운명이 우리의 두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유기농업이 실재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해도, 유기농법은 인간의 욕구와 자연의 욕구 사이에 균형관계를 회복해 주었다. 한편으로는 오염을 감소시킬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밥상에 생명력을 준다는 것이다.
(예) 유기농업에 의해 생산된 복숭아를 사는 공격적 소비행위는 바로 유기농업을 장려하는 것이며 동시에 화확농업을 추방하는 것이다. 비폭력운동을 향한 걸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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