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자체가 변화」라고 우리의 선조들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변화가 주는 충격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까? 우리가 변화에 대해 저항하는 여러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은 나름대로 사회에서 순기능을 했기 때문에 윤리와 규범 그리고 도덕이라는 척도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보수성」은 그대로 한 사회에서 「좋은 쪽」이라는 기류가 생기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재빨리 청산해 버릴 수 있는 적응력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변화를 잘 수용할 수 있는지 내심 고심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마음놓고 따라서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있기를 바라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갈수록 모델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올해의 패션을 예로 들며 패션 원칙이 따로 없다고 한다. 「속옷은 겉옷 안에 입어야 한다」거나 「빨간색과 녹색은 같이 쓰면 안된다」는 패션 원칙 같은 것이 없어 졌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패션원칙이 어떤 원칙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떤 원칙도 없는 만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입을 수 있게 되었다. 패션에서 읽어낼 수 있는 징조들은 그대로 다른 부문에도 적용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어떤 옷을 입든, 머리 모양을 하든 상관이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짧은 소매를 입고 나가는 D데이를 정하는데 사람들은 은근히 신경전을 벌였었다. 남보다 빨리 짧은 소매를 입게되면 어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서 한마디씩 들었기 때문이다. 외국 친구가 나에게 한국에는 긴팔 입는 날이 정해져 있느냐고 물었을 때 정말 속상했던 기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어떻든 한국의 엄마들은 딸이 남한테 구설수를 듣지 않게 하려고 남이 보면 감기 걸리겠다면서 단속을 하곤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여름에도 긴팔 옷을 입는게 멋쟁이인 시대다.
이런 작은 변화들에서 큰 변화의 징후를 알아낼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의 어머니들이 보여준 모습은 「한국시민」을 키우는 한국의 어머니다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의 어머니일 수 있는 척도가 없어져가고 있다. 유행은 세계 어디를 가나 같은 모습이다. 아니 갈수록 사람들이 유행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원칙 없는 패션을 창작하는 이유는 그들이 자유로 와졌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유행에 좌우되지 않을 정도로 당당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개인 자체로서 자신있어 질수록 어느 국적과 동일화해야만 당당해지는 비겁함이 없어지게 된다.
현재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는 결국 이와같이 인간 한 개인으로서 자신있는,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정치 경제적인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세기 후의 어린이들은 여권이나 비자를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앞서 나아가야할지 모른다.
미래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면 현재의 청소년들이 미래에 하고 싶어하는 일을 알아보면 된다.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놀랍게도 그들은 우주공학과 로봇공학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처하느라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들은 로봇과 함께 우주를 날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꿈은 동화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지금의 청소년들은 우리가 꿈처럼 여겼던 것들을 이미 일상적으로 살고 있는 세대이다. 컴퓨터니 통신이니 「버츄어리얼리티」니 하는 것들은 몇년 전만 해도 우리와 상관 없는 과학자들만 관계된 별난 세계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나라의 국운이 달린 중요한 과제로 가장 큰 경제 문화의 원천이 돼버렸다.
사실 변화의 주 원인 중의 하나는 냉전체제가 무너진 것도 있겠지만 방송과 통신, 컴퓨터 등 첨단 과학이 일상화된데 더 큰 원인이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가 무너진 것도 무기 때문이 아니라 서양에서 현대과학을 커뮤니케이션에 접목시킨 결과 민주주의가 확장된 결과라고 한다. 그리고 그 첨단과학은 우리의 청소년들이 우주로 나아가는 일을 현실화 시켜줄 단계에 와 있다. 그들은 아마도 동화를 현실로 살게 되는 첫번째 인류가 될 것이다. 예전에는 신화와 전설은 나와 동떨어진 다른 세계였지만 그들은 거대한 우주로 또 미지세계인 「쿼크」와 생명공학으로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 내면서 스스로 신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 있다.
이러한 미래를 살아갈 그들에게 우리는 세계인을 넘어서 우주에서 하느님의 뜻하는 「우주시민」을 정신적 지표로 내세워야 할지 모른다. 너무나 앞선 이야기일까.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 양상은 우리의 시야를 지구에만 한정시키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라고 외치는 것 같다. 21세기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 20세기 동안 예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주를 날아가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고 있는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우주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가톨릭은 지금부터 어떤 준비를 해야할까? 아마도 우리의 청소년들이 살게 될 미래를 우리도 함께 꿈꿀수 있을때 「삶 자체를 변화」로 볼수 있는, 그래서 변화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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