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동의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죽이지 말고 살리자는 운동이다. 살림운동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죽음의 문화에 중독되어 있는 듯하다. TV광고를 보면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다. 영화는 더욱 폭력을 미화한다. 얼마나 많이 죽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비디오 게임에서도 죽여야 쾌감을 얻는 정도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속에 폭력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한다.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신비주의가 상실된 사회의 도착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우리 교회를 떠나는 많은 사람들도 대부분은 제도교회안에서 영적인 공허감을 채울수없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한다.
이미 아는 것처럼 한국은 사형존치국이다. 집행방법에는 전기의자ㆍ극독주사ㆍ총살ㆍ돌로 쳐 죽이기ㆍ가스실 등이 있지만 한국의 사형집행 방법은 교수형이다. 현재 한국에는 40명의 수인들이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죄와 벌은 상등한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벌을 당연히 받아야 한다. 아마도 사형제도의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응보적 법감정의 충족이라는 이유일게다.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응보형론). 그리고 사형제도가 있어야 사회질서가 유지되고 범죄 억제가 된다는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우선 세계 사형제도의 사형 현황을 국제엠네스티한국 지부의 자료에 근거해서 살펴보자(1995년 1월현재). 현재 세계 96개 국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53개국, 일반 법치에 대해 사형을 폐지한 국가가 16개국, 사형은 존치하나 최근 10년간 집행하지 않은 국가가 21개국등으로 그 폐지 추세는 증가하고 있다. 현재 존치국은 1백3개국이다. 전체 비율로 볼 때 47%의 국가가 사형을 폐지하였다. 르완다와 퉁가, 필리핀이 사형은 존치하나 시행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되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사형제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상당수는 이 제도를 찬성하는 걸로 알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문제는 예수께서도 십자가위에서 사형을 당하셨다. 사형제도는 국가의 살인행위이다. 우리는 사형제도를 재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가 사형에 대한 어떠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생명권은 국가에게 있다고 했을때 형법 제135조도 마찬가지이다. 합법적 행위가 다 도덕적인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현대역사에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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