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틈엔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병아리 같은 샛노란 입들을 마음껏 벌리고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개나리,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기가 그지없다. 그 사이사이로 약간은 촌스런 듯한 분홍색의 진달래도 꽃망울들을 터트리고 있는 참이다. 이제 며칠 동안이라도 노랑과 분홍이라는「부조화의 아름다움」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시선을 한가롭게 모아줄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분홍과 노란색, 노랑과 분홍색은 상식적 시각에서 보면 결코 어우러지는 색깔이 아니다. 만일 어떤 여성이 노란색 블라우스에 분홍색 스커트를 입고 거리에 나섰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나가던 사람 열 명에 아홉 명은 한번쯤 특별한 눈으로 그 여성의 놀라운 선택에 눈길을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요즘은 상식이 아닌 세상이 되어버리긴 했다. 상식은 곧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색감에 대한 상식 역시 어느 틈엔가 무너지고 있음을 흔히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분홍과 노랑이 의복에 적용될 경우 조화롭지 못하다는 상식이 이미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것이 근자의 상식처럼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튀는 색」이 분명한 것 같은 이들 노랑과 분홍이 개나리와 진달래라는 꽃으로 만날 때 튀는 색으로의 상식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튀기는커녕 개나리는 진달래와 더불어 있을 때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진달래는 개나리 군단 속에서 어울려 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환상적이기까지 한 이들의 만남, 참으로 놀라운 자연의 섭리가 아닐 수 없다.
흐드러지게는 피었지만 오히려 소박하다는 표현이 걸맞은 개나리 군단은 눈만 돌리면 마음만 먹으면 의외에도 손쉽게 만날 수가 있다. 도심의 삭막한 빌딩 숲 속에서도 개나리는 있고 빌딩 옥상 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관심을 기울여 아파트 주변을 둘러본다면 분홍과 노란색의 놀라운 조화에 취하는 여유로움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여유라는 것이 없어져버렸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뛰어도 뒤쳐질 새라 허둥대다 보면 하루 해가 늘 모자라는 일상 속에서 봄은 어느새 속절없이 왔다가 가버렸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 기성세대뿐인가? 새벽 별 보고 지는 달을 벗 삼아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우리의 젊은 친구들, 그들에게도 봄은 이미 더 이상 희망과 새로움의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우리는 너무나 바쁘게 살아간다. 4월 16일 휴거설을 믿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조차도 당장 내일 종말이 올 것처럼 허둥대며 살고 있다. 좀 더 가져야 하기 때문에, 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좀 더 누려야 하기 때문에, 좀 더「자알」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딪치고 깨지고 사우기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보다 나은 행복과 풍요한 미래를 추구하기 위한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것 일수야 없지만 가질수록 누릴수록 우리의 심성은 오히려 삭막해 지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인가. 더 가진 이는 그래도 부족하기만 하고 덜 가진 이는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만 되어가니 도대체 어쩌자는 얘긴가. 결국 우리 모두는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망나니 같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종말론 자들이 휴거 된다고 선전하는 4월 16일은 공교롭게도 우리 믿는 이들에게 있어 축제 중의 축제인 부활절과 맞물린다. 죽으셨지만 살아나셨고 모든 것을 잃으셨지만 모든 것을 얻으심으로써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진정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새 봄의 영원한 상징이 아닐 수 없다.
특별히 광복 50주년, 분단 50주년에 맞는 부활절은 우리 믿는 이들에게 몇 가지 중대한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우리 마음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사라의 마음을 되살리는 것이다. 따뜻한 마음씨를 인정해주고 친절한 태도를 존중해주며 정직한 선택에 박수를 쳐주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패배해 가는 우리 안의 불신과 미움을 삭이는 일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향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준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안에서부터 사랑의 마음을 싹 틔우는 일은 50년간 떨어져 살아온 남과 북의 민족이 하나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 일을 위해 우리는 먼저 김수환 추기경의 부활메시지대로 서로간의 단점을 발견하기보다 장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할 것이다. 서로가 장점을 찾아 그것을 인정해주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거듭한다면 우리 민족은 50년간의 단절이 만들어낸 상처와 아픔, 미움과 불신의 벽을 보다 쉽게 뛰어 넘어 설 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단 50주년에 맞는 부활절, 그리고 새봄에 우리 남과 북, 북과 남의 민족이 개나리와 진달래처럼 예쁘게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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