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난생 처음으로 법정에서 증인을 서게 되었다. 친구의 동생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열리게 된 법정이었다. 공교롭게도 가톨릭 교수회 지도신부인 서강대 박홍 총장과 가톨릭 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내가 같은 법정에서 증인을 서게 된 것이다. 보도진들은 사건의 내용보다는 박총장의 증언내용 자체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는 듯 카메라를 들고 박총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증언은 보도진들의 관심 밖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주목도 받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마음 편한 일이었다.
실은 재판이 있기 며칠 전 법원으로부터 증인으로 출두하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통지서의 내용인즉 모월 모일 모시에 법원으로 출두하라는 것과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출두할 수 없을 때에는 미리 사유서를 제출하라는 것,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출두하지 않을 때에는 의법 조치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증인으로 서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발적으로 동의한 일이었지만 출두통지서의 내용을 보고 좀 불쾌한 기분이었다. 증인으로 나와 재판을 하는데 협력해 달라는 부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명령조의 표현이 불쾌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거부감 같은 것이 일기도 했지만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라서 시간을 내어 법원에 출두(?)한 것이다.
법정 밖에서 서성이며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다가 변호사의 안내로 법정에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안계춘」하고 누가 내 이름 석 자를 부르는 것이었다. 남이 내 이름 석 자를 이렇게 떡 치듯 부르는 것은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학생 때 선생님이 출석 부를 때를 빼고는 이런 일은 아무데서도 없었다. 가져오라고 했던 도장을 쓰지도 않고 선서인 듯싶은 서류에 지장으로 찍으라고 했다. 영화 같은 데서 흔히 보는 증인선서 절차 같은 것도 없이 봉투 하나를 주며 나가 있으란다. 박홍 총장의 증언이 먼저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법관합의실(?)인지 하는 방에 갔고, 거기서 혼자 앉아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다. 바쁜 사람을 일찍 오라 해놓고 이렇게 기다리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박총장은 무슨 증인을 하고 있을까? 내 증인이 피고의 판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증인을 마치 죄인 취급을 하는 것 아닌가? 증인을 취급하는 절차들이 꼭 이래야만 하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직원의 안내 소리에 소스라쳐 잠을 깨어 어리둥절한 상태로 법정의 증언대에 앉게 되었다.
증언대에 앉아 앞을 둘러보니 법관이나 검사, 변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나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다. 내가 사법시험 위원을 했을 때 그 시험을 치고 합격한 사람들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증인 심문과정에서는 물론 반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증인을 존경하는 어감은 아니었다. 변호인측과 검사측의 증인 청취가 있었다. 그 사람들은 증인심문이라든가 반대심문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런 용어들도 나에겐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증인이「예」「아니오」로만 대답하도록 요구하는 질문의 형식이었다. 아무리 질문을 잘 만들어 한다고 해도 복잡한 인간사를 말하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예, 아니 오로만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변호사나 검사 측이 각각 자기에게 유리한 질문을 만들어 가지고 예, 아니 오로만 대답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유도질문이 될 가능성이 많다. 객관적인 사실을 수집하는 사회조사에서는 그래서 질문을 만들 때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더러는 응답자의 생각이나 판단을 적도록 하거나 상황을 설명하도록 하는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이 라는 것을 활용한다. 폐쇄형 질문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예, 아니 오로만 대답하도록 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증언을 청취하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과 증거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면 여기에서도 사회조사의 일반적 원리를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박총장과 나의 증언이 어떻게 감안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검사측의 7년 구형은 삼엄한 것이었다. 뒤에 알아보니 2년6개월 실형을 언도 받았다고 한다. 친구의 동생은 다시 상소를 한단다. 나의 증언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구나 라고 생각하니 허무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구속 기소된 경우들은 궁극적으로 민족분단의 비극에서 연유한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처벌을 받는 젊은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보니 1만1천원이 들어 있었다. 돈 벌려고 한 일은 물론 아니었지만 나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대가로는 가장 적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국민의 세금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것도 많은 것 같고 쓰고 싶은 생각조차도 없어졌다.
아마도 법정에서 증언을 해본 사람이면 모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고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씁쓸한 경험이었다. 나의 증언이 판결에 얼마나 고려가 되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증인들을 좀 더 친절하게 취급하고 증언의 청취를 좀 더 자세하고 객관적으로 할 수는 없을까? 모두가 즐거운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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