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가 지천으로 피는 봄날의 출근길은 상쾌하다. 시내버스 안에서 떠들고 있는 여학생들의 목소리도 지금은 귀찮지 않다. 횡단보도 저편의 낯선 사람들, 신호등의 빨간 불빛, 꽃다방 미스 김의 짧은 치마 뒤 폭까지 물오른 버드나무의 연둣빛 가지를 배경으로 삼으면 그 모두가 아름다운 풍경.
이 싱그러운 아침, 나의 출근길을 가로막은 소녀는 손수건이나 넥타이핀쯤 될 법한 선물을 쑥스런 표정에 실어 내밀고 있다.
아, 오늘 아침의 금상첨화. 그러나 이 선물을 나 아닌 다른 김선생 - 이마가 좀 벗겨지기는 했으나 얼굴이 잘 생기고 체구가 가냘픈 총각 선생님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더니 그 여학생은 등교길의 많은 학생들 틈으로 바쁘게 스며든다.
교무실에서 총각 선생에게 선물 심부름을 하며 어느 소녀의 가슴 저미는 첫사랑도 함께 건네주고 있는데,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까? 그 아이는 버릇이 없었던 것일까?
첫사랑, 그 복된 병을 앓고 있는 여학생이 총각 교사에게 지난밤 모든 이야기 가득 담긴 선물을 보내는데 내가 이용(?)되었다.
하필 나를. 혹, 사랑으로 절박했던 그 소녀가「저 선생님만큼은 이 심부름을 즐거운 마음으로 해 주시리라」믿었던 것은 아닐까. 총각 선생님에게는 사랑을, 나에게는 신뢰를. 나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일을 제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습관이 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혀를 차는 교사보다 사랑의 심부름꾼이 되고 싶다. 그렇게 이용되는 거라면 더 자주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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