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네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내가 일러주는 산에 올라가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창세기 22,2)
우리 집엔 성경이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이방인 가족이었습니다. 그 즈음 연필을 잡는 팔에 통증이 오고 글씨를 쓸 때마다 팔에 힘이 없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더욱 팔이 쑤시고 아렸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수척해가는 내 모습은 명랑하던 웃음과 기쁨에 가득 찬 나날을 앗아가면서 슬픈 소녀로 변했습니다.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욕망은 슬픔을 나타내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했고 반장 노릇도 열심히 잘했지만 어찌하리. 목욕탕에 가서 볼 때마다 양쪽 팔의 굵기가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 나 팔 아파요」
어느 날 나는 어머니를 따라 봉수라는 여자 점쟁이 집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굿을 해야 팔이 낫는다고 했습니다. 봉수 점쟁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대나무를 붙잡고 신이 내리길 기다렸으나 헛일이었습니다.
「안되겠어, 전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신이 내리지 않아 굿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은 검정 옷을 입었던 넓은 들녘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봉수 점쟁이가 그걸 알았습니다.
「하나이신 천주를 흠숭하라」
첫째 계명을 어긴 자에게 내린 매를 나는 맞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우리는 얼마나 더 매를 맞아야 정신이 들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는 자를 위해 많은 세월을 주셨고, 아드님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어 죽고 부활케 하시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70평생 아니 80, 90평생 동안에 뉘우치고 당신 품으로 돌아오라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음에 간 곳은 침 놓기로 삼남에서 소문난 한약방이었는데 대침은 보기만 해도 떨렸습니다. 오른 팔의 굵기를 실로 재어보고 왼팔과 비교했습니다.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이런 부끄러움보다 더한 것은 밤에 잘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새벽같이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가 사진을 보기가 바쁘게 오른 팔이 썩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청천벽력이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깨까지 썩어 들어가기 전에 팔을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시골에는 수술이 불가능하니까 일본이나 서울에 가면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고……
도립병원 침대에서 떨어져 팔의 뼈에 금이 간 사이로 운이 나쁘게도 균이 침입해 농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약도 먹고 주사도 맞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같으면 골수염 수술이 쉽겠지만 50여년 전 더군다나 가난한 시골가정 형편으론 서울, 일본하는 소리는 소설 같은 해결책이었습니다.
「가자, 그 곳에라도 가서 실컷 울자」 생각해낸 것이 집 앞의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는 울며 땅을 치며 외치는 소리가 항상 들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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