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사회는 성 정보의 홍수 내지 성의 혁명기에 와 있다.
음란 비디오가 범람하고 성학대와 성폭력이 난무하며 불륜이 공공연히 안방극장의 단골 메뉴다. 영화와 소설에서 성과 폭력이 배제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 의문이다.
최근 급격히 증가하는 이혼의 주요 원인이 성문제라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사회가어떻게 될 것인가?
왜 인간은 이렇게도 성에 집착하고 성이 과잉 숭배되고 남용되며 변태적 성행위가 판을 치는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인간은 매우 성적인 존재다.
성은 애착과 공격성과 함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동범주(본능)의 하나이며 따라서 성이 없이는 인류가 존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성은 다른 동물에서와는 달리 여성이 발정기가 따로 없어서 남성을 항시 받아 들일 수 있다.
즉 인간에 있어서 성행위가 항시 가능한 것은 인간의 성은 생식기능이상의 기능이 있음을 말해 준다.
인간에 있어서 성은 한쌍의 남녀관계를 맺어주고 즐겁게 해주고 그관계를 오래 유지 시켜주며, 이로써 동물 중에 가장 긴 아동기를 가진 2세의 양육과 교육이 가능하도록 고안된 진화론적 의미가 있다. 또한 인간의 성은 사랑의 표현과 남녀감정 교류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이 있음은 인간의 성행위가 얼굴과 얼굴을 맞보고 행해질 수 있도록 고안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성은 다른 어떤 본능보다 심리적 요소, 사회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한다. 개인의 성격, 아동기 경험, 부모의 부부관계, 대인관계 교류능력, 성관이 복잡하게 관여하며,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와 편견, 금기(터부)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성관계와 성행위 양태가 시대에 따라 매우 다르게 마련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성이 너무 억압된 사회에는 심리적, 정서적 장애가 많았고 성이 너무 개방적이고 통제가 결여된 사회는 모든 질서가 문란해 지고 향락과 쾌락 지상주의로 망했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로마가 그러하였다.
그렇다면 우리 현대인은 어떠한가. 현대인은 자꾸만 자연과 멀어져 가고 첨단기술 문명속에서 살면서 이탈감과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핵가족화와 개인주의의 팽대는 소외감과 소속감의 부족을 낳았다. 여성권의 운동과 남녀평등주의의 확산은 남녀 역할과 성관계의 주도 성에 큰 변화를 일으켜 남성의 거세불안을 증가시켰고 남녀관계를 성대결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결과적으로 남녀공히 성에 대한 불안과 혼돈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이탈감과 실존적 불안, 소외감과 외로움에 대한 해답을 현대인은 돈과 성에서 처절하게 찾고 있고, 사랑과 인간다운 접촉의 굶주림과 공허감은 성의 끊임없는 요구와 성의 집착으로 메꾸려 하며, 부모와의 관계에서 해소되지 않은 분노와 적개심은 강간등 폭력적 성관계를 통해 발산시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이 남용되고 오용되고 변태적이 되고 있고 그 대가는 성의 신성함과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의 상실이다.
성의 전제조건은 사랑과 존경이며 공격성의 통제인데 현대인에게 이 모두가 너무나 어려운 과제가 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의 성문제란 성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사랑의 문제요 인간성의 문제요 공격성의 문제다.
성은 현대인의 심각한 문제가 표현되는 공통통로 일뿐이다.
사랑과 존경, 남성적 기개와 여성적 수용성이 결핍된 성은 기계적이고 기교적이 되며 단순한 쾌락에 그치고 궁극적으로 허무감만을 남길 것이다. 말초적 향락을 추구하는 것도 결국 성을 통해 의미 있는 사랑의 관계를 찾으려는 처절한 노력 일지도 모른다.
우리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적 능력에 대해 불안 초조해 하고 있다.
내 상대방은 나의 성봉사에 만족하는가? 나는 성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 뭔가 놓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성의 집착과 과대평가와는 정반대로 상당수의 사람들은 성에 대한 두려움 내지 혐오증에 빠져 성을 전면 거부하거나 정상적이고 자연스런 성은 피하고 동성애, 아동상대의 성, 성폭력, 가학증 등 변태적 성행위에 빠진다.
최근 일부 젊은이들은 남녀의 직접적인 성은 피하고 음란물을 보거나 들으며 자위 행위로 만족하든가 컴퓨터에 나오는 여성과 sex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러다간 성의 기계화와 대중상품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이 남녀 관계를 기쁨과 즐거움에 찬 관계로 오래 유지시켜 주며 서로의 인격적 성장을 돕는 본연의 기능과 의미를 잃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처방은 성지식과 기술을 겨냥한 성교육이 아니라 올바른 인간 성의 함양이며 성의 제자리 찾기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그 본연의 사랑, 존경, 믿음의 관계로 회복시키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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