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이 저지르고 있는 죄악의 끝은 과연 어디쯤 있을까. 주일 아침 또 한번 우리를 경악시킨 르완다 키베호 난민촌 대량학살소식은 문득 인류의 종말까지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어처구니 없는 대참사, 그 분노에 아직도 마음 한자락이 잡혀 잇는 우울한 주말아침에 날아온 르완다 난민 참변은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그저 송구스러운 뿐 정말 할말이 없다.
무참히 죽어간 수천여명의 르완다 희생자,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느려야 할 최상의 존엄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오직 고통과 배고픔, 슬픔과 원망만을 가슴속에 품은채 사라져간 무수한 어린 생명들의 영전앞에 진정으로 사죄와 용서를 청하고자 한다.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넉넉한 품속에 무죄한 당신의 영혼들과 어린영혼들을 감싸안으시고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게 해주시기를 두손모아 기도드린다.
도대체 사람,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전들은『가장 이지적이고 모든 도덕 관념을 갖춘 만물의 영장, 법권리 의무의 주체인 인격자』가 바로 사람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또『가장 진보된 고등동물이며 문화를 만들어 내고 사유(思惟)하는 능력을 지닌자』『법률상 권리의 의무의 주체인 자연인』을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더이상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최상급 평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 정의는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아주 작은 사전에서 조차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 믿는이들에게 있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난, 축복받은 존재이다. 그야말로 영혼과 육신을 갖춘 최상의 인격체인 것이다.
그 최상의 인격체들이 지금 최하급의 동물만도 못한 짓거리로 스스로를 추락시키고 있다. 스스로의 인성을 파괴할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온갖 만행들이 지구 곳곳에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냥 나가다간 사전에서 우리 인간은 자신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읽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이란 자들은 자기 스스로는 인격을 갖춘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사실은 인격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최하급의 동물임』아니 어쩌면 이렇게 기록할 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것들은 배가 고프면 적을 공격하는 우리 동물과는 달리 아무 이유없이 자기네끼리 죽고 죽이는 이상한 동물임』따라서『아예 인간이란 상종하지 못할 존재』라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동물이라는 인간, 사람인 우리가 꾸려가는 지구의 현실을 보면 진정 어처구니가 없다. 가장 원조적인 살상과 살륙으로 대변되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비극은 어쩌면 20세기를 마무리하기 위한 몸부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소말리아, 르완다로 이어지는 내전에서부터 천재지변의 기근이 숨돌릴사이 없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보스니아 사태 역시 인간의 극악성을 한마디로 입증해 주는 엄청난 사태로 수년을 이어오고 있다.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단어를 파생시키면서 무차별 살상 강간으로 점철된 구 유고내전 현장 역시 인간존엄성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강간에 의해 수태된 태아를 살리기 위해 수도복을 벗어야 했던 한 수녀의 고귀한 선택은 우리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자연과 환경의 파괴는 또 어떠한가. 오늘날 지구의생태계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만큼 파괴되고 있다. 인간의 손길, 발길이 닿는 곳이면 그것은 곧 파괴를 의미하게 된 오늘날 과연 우리 인간은 아직도 이 지구를 다스릴 만물의 영장으로 자부할 수 가 있단 말인가. 이대로 나가단 인간에게 지구를 맡긴 일이 결국『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격에 비유될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의 오클라호마 폭파사건, 일본의 독가스사건, 르완다 대학살 등등 모두 인간에 의해 자행된 인재다. 인간들의 의도적 선택에 의해 저질러진 이같은 만행은 어떤 명분, 그 어떤 변명으로도 대변될수가 없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이같은 만행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무능력 앞에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갖고 태어난 인간인가 의 구심마저 들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상을 계속 모독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대처하실까.
만일 우리가 끝없는 살륙과 살상을 계속한다면 하느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계속파괴하고 우리 후손들에게 절망의 땅을 물려준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어떻게 처리하실까.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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