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어 대학신입생들과 만나는 첫 시간이었다. 「신세대의 첨단」을 걷고있는 그들에게 신세대와 아버지세대의 차이점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그들은 처음에는 내숭을 떨듯 잘 말하려 하지 않으면서 기성세대의 대화법을 잘 따르고 있었다. 저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잘못 말했다가 점수 안나오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나 자신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특유의 내「지랄론」을 펼치니까 그제서야 하나씩 말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내는 의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어른들이 신세대들의 생각을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말대답하는 것은 예외가 없다면서 입을 막으면 말 그대로 일을 봉해버린다고 한다. 그런 어른들 앞에서는 아무 말 도 못하고 뒤에서 말하는 것은 뒤통수치는 격이 아니냐고 반문할때 대답하기가 참 난감했다.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그렇게「뒷다마」치기보다 앞에서 말해주는것이 더 예의바른것 아니냐며 솔직하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은「지랄 」이란 용어는 내가 신세대와 기성세대간의 세대차를 교통정리하기 위해서 차용한 충격요법식 용어이다.
튀는것을 거의 죄악시하던 한국인의 심성이 신세대의 튀는 감성과 맞닥뜨리면서 일어나는 격렬한 충력을 흡수할 수 있는 틈새를 이 단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랄이란 튀는 것이 극대화 되어서 면죄부를 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때 사용해온 단죄용 단어이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주눅들어 곧 잠잠해지기 마련이었다.
된다는 것은 남과 뚜렷이 다른 차별성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사실 내가 남과 다르게 생겼는데 자신의 다른 점이 있는대로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남을 고려하지 않는 거만한 마음을보로 여기는 풍조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남과 크게 다르지 않기 위해서 기울이는 노력이 때로는 눈물겨운 때도 있다. 그런 노력없이 눈치없게 계속 티를 냈다간「그래, 너 잘났다」란 말을 듣기 십상이다.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기를 부각시키면「저××는 지랄이야」란 말이 곧바로 뒤따르곤 했었다. 그리고 그룹에서 소외되는 벌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맥이 성공의 주요수단이기 때문에 튄다는 것은 결국 자살골이 되고 만다.
그러나 성공이 거대 조직의 일원이 되지 않고도 가능한 시대가 되자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에 대한 조사에서 PD나 카피라이터, 컴퓨터 게임 프로그래머 등 창의성이 중시되는 직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일들은 철저하게 창조적이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표현의 다양성은 기본이고, 튀는 것도 자연스럽다 못해 당연한것으로 여겨진다. 신세대들은 더이상 튀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으로 지적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게 된것이다.
이와같은 변화가 가능한 것은 산업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창의력은 자신의 생각을 꺼리낌없이 마구 표현할수 있는 자유로움이 보장될 때 꽃피게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것이 빠른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어름어름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의식구조를 시대에 맞게 바꾸어 소위 한국적으로 소화해야 할 시기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공여부에 따라서 기성세대가 이루어낸 발전의 바톤을 지속적으로 어이 받을 수 있느냐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그런데 성공을 위한 기본적 속성의 집단적 구속력과 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성으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일종의 반어적 과장 요법으로 상반된 두가지 성격을 수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찾아낸 단어가 바로「지금」이다. 지랄은 남과 달라서 튈정도로 그사람 고유의 탈랜트를 뜻하는 잠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이용어는 비속어로 상용되어 왔기 때문에 동양인 고유의 수치심과 관련된 죄의식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카타르시스적 기능도 가능하다.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에서 자유로운 마음을 전이 시키려고 나는「교수」란「지랄을 떠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생떽쥐베리의 소설「어린왕자」처럼 지구의 한 사람이 살지않고 많은 사람이 사는 이유로 이「지랄론」을 편다
서로서로 작자의 지랄이 뭔지 알아서 자기의 지랄대로 잘 살수 있도록 서로 돕기 위해서라고 남편과 아내의 중요한 역할 중에 상대방의 지랄은 알아채서 도와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일 것이라고 새로운 사랑론을 펴기도 한다. 그리곤 덧붙인다. 지랄=탤런트라고, 이처럼「지랄」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일컫는 단어로 둔갑하게 된다.
지랄이 참으로 아름답게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을 자신을 표현하는데 어떤 주저함도 느끼지 않을수 있는 해방된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과목 첫시간에 말하는 것이 지랄론과 함께 마음대로「말대답」을 하라고 부추겨준다. 그래도 자신의 의견을 마음대로 표출하는데 두려워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측은하다 못해 아려온다. 언제나 우리의 학생들이 아니 한국인들이 자기의 지랄을 마음 놓고 펼칠 때가 올지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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