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게 시작하였다. 지금부터 5년 전의 일이었다. 그때에는 WTO체제도 없었고 살리기운동본부도 없었다. 1990년 월배본당에서 본당사목의 한 모습으로 대구 한살림, 안동 생명의 공동체가 본당 공동체의 틀로써 서서히 연대하였다. 그 당시 한살림과 안동생공이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대구 푸른평화 소비자 공동체에게는 아주 좋은 대안이 아닐 수 없었다. 한살림은 소비자로서 생공은 생산자로서 운동의 얼개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살림의 돌아가신 장일순 선생님으로부터 그 사상을 배웠다.
우리는 91년에 본당에서 좀 떨어진 상인동에 약12평 정도의 매장을 얻었다. 그때 전세금이 천오백만원 정도였다. 이 돈도 한 사람이 낸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조금씩 갹출한 것을 모았다. 요즘 같은 무슨 사업이 아니라 좋은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서 스스로 하였다. 좋은 일을 좋아서 하는 일이 운동이 아닌가?
상인성당을 지어야 하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3번이나 지역시민과 함께 우리 밀잔치를 개최함으로써 보수성이 강한 이지역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냈다. 교회안과 교회 밖, 인간영혼과 밥, 도시와 농촌, 우리 먹을 거리와 고향, 밥상과 땅, 여성과 환경 등을 그물코처럼 엮어냄으로써 대구경북이라는 지역 안에 생명운동이라는 이미지를 우리교회가 심어줄 수 있었다. 어제는 주부들이 우리먹거리 문화답사를 떠났다. 서로의 삶의 현장을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먹거리의 나눔이 아니다. 현장학습, 생산자와의 만남, 희로애락을 나눔, 자연학교, 1박2일의 농촌생활 체험, 어린이 산간학교 등을 통하여 나누어질 때 참된 의미에서 직거래라고 본다.
이제 상인공동체는 7백여명이 7천만원을 투자하여 조합으로 발전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한 개인이 투자하여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주의적 방식보다도 많은 사람이 적은 돈을 투자하여 큰 자본을 만들어서 함께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본다. 「창원의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 창원 밀수레」가 그 예이다.
창원공동체는 민들레처럼 그 뿌리와 열매맺음에 있어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공동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지도자없이 여성 스스로가 그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 그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교회안에 우리 농촌살리기운동의 모델이 필요하다면 창원공동체(동시형) 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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