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온천하를 주고도 바꿀수 없는 게 생명이라고 하였는데 1백명이 넘는 귀중한 목숨을 앗아간 대구도시가스 폭발사고를 접한 우리는 통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난지 불과 4개월만의 일입니다. 가스안전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다짐이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열차탈선, 여객선침몰, 항공기 추락, 성수대교 붕괴 등 대형참사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 인재, 한국이 부끄럽다」고 언론은 탄식합니다. 아무리 으름장을 놓고 다짐을 해보지만 사고는 계속됩니다.
먼저 사고원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책임소재가 분명해지고 사고재발을 막을 대책수립이 가능합니다. 환자의 병명을 모르고 처방을 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여권은 조기수습에 급급하고 야권은 정치쟁점화에 열을 올립니다. 사고를 둘러싼 소모적인 정쟁이 사고원인 분석과 대책마련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을 여야는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 원인자가 응분의 책임을 부담해야 합니다. 원인 따로 책임 따로, 책임은 언제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부담하는 한 대형사고는 연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론이 악화될 당시에는 책임을 지겠다고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유야무야 끝이 흐려진 적이 없었던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이번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수사기관의 일관성 없는 혼선을 보면서 원인과 책임규명에 있어 한계를 봅니다. 수사능력 향상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성수대교사건과 같은 대형사건에서 어느 누구하나 실형선고 받은 사람 없었습니다. 법원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사고에 대한 수사부실이 법원으로 하여금 어정쩡한 판결을 선고할 수 밖에 없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수사기관의 전문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당국도 사고원인의 철저한 규명이 갖는 정치적 부담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오클라호마 주청사 테러사건이나 일본의 고베 지진사건 같이 사건원인이 예상되는 사고에서도 현장보존을 철저히 하여 원인분석에 심혈을 기울이는 지혜를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셋째, 원인과 책임의 소재에 따른 합리적인 처방을 만드는데 노력합시다. 건설에 따른 사고가 날 때 마다 하청에 하청을 주는 다단계 도급공사의 실태, 공사실가를 무시한 최저입찰제, 무허가 공사나 부실한 감리제도등이 지적되어왔습니다.
물론 감리제도의 개선 등 눈에 띄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저낙찰제나 무허가 공사, 다단계 하청의 관행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사고도 명색이 이 지역 굴지의 건설업체에서 공사를 하면서 허가도 받지 않고 공사를 강행하였습니다. 공사를 하자면 가스배관지도, 통신케이블지도, 전기배선지도, 상하수도관지도를 사전에 준비하여 공사의 안전을 기해야 하는 데도 도면 하나없이 공사를 했다고 하니 사고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현장의 가스관은 도면에 나타나 있지도 않았다고 하니 지하도면을 입수 하였던들 사고 발생을 막기 어려웠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공직자의 안이한 자세도 이번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결론을 짓는 순서에 들어서면서 우리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각종사고가 왜 일어나고 있는지에 관하여 사회구성원 모두가 옷깃을 여미고 숙연한 참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이나 당국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고, 국민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대형참사의 빈번한 발생은 바로 이 시대의 징표입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적당주의와 졸속주의로 만연된 총체적인 문화풍토가 대형사고를 낳게 한 것입니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앞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빨리 빨리」 서둘러 왔습니다. 압축성장을 지향한 결과 놀라운 경제성장의 신화를 이룩하였다는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국제화의 파고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양적전진에 급급하다 소홀히 하게 된 질적발전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어느새 자족과 자만이 빚어낸 적당주의와 결과에 연연한 졸속주의가 도처에서 흉흉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산업화, 도시화에 따르는 불안요인과 졸속, 적당주의의 위험에 직면하여 국민이나 정부, 그리고 기업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자기반성과 의식개혁이 있어야 할것입니다. 정치권 역시 소모적인 정쟁을 지양하고 국민복리를 위한 탈 바꿈이 있어야 합니다.
평신도는 이 시대의 징표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징표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반생명적 현상의 불식과 사회의 성화를 위해 새로운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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