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전 두 번째로 베트남엘 갔다. 92년 6월, 한 베트남간 수교전에 베트남을 다녀왔으니 만3년만의 상봉인 셈이었다. 그런데 그 3년동안 베트남은 너무나 변해있었다. 그 변화의 냄새는 베트남의 관문이라할 호치민시 탄손얏 공항에서부터 진동했다. 출입국 절차는 여전히 까다로 왔지만 출입국 관리소나 세관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출입국 업무와 세관업무가 구분이 없었던 당시와는 달이 이 두가지 업무가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는 사실과 20대 여성들이 중심을 이루던 직원구성원 상당수가 남성으로 교체되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좁고 칙칙하고 지저분하기만 해서 꼭 성냥갑과 같다고 생각되었던 공항청사는 말끔하게 단장되었으며 따뜻한 바람을 쏟아내던 대형선풍기 대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손님들을 상큼하게 맞고 있었다.
출국장의 변화는 더더욱 예사롭지가 않아 보였다. 앉기조차 민망하기만 하던 몇개의 의자는 출국장 곳곳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선을 보였고 달랑 두세개 점포가 고작이었던 면세점이 출국장을 돌아가며 감싸고 있었다. 물론 토산품점을 제외하고 모든 면세점에서는 내용이 똑같은 물건을 팔고 있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같은 변화는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감지할 수가 있었다. 직항로가 개설되기 전이라 홍콩을 경유해야 했던 당시와 달리 에어베트남으로 곧바로 베트남으로 향할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에어베트남 비행기는 새것답게 희망으로 반짝거려 보였다. 하늘거리는 분홍빛 아오자이로 단장한 스튜디어스들의 매너는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몇대의 차량, 간혹 보이는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 물결이 인상깊었던 베트남 호치민시는 더이상 한가한 도시가 아니었다. 도로 전체를 메우다시피했던 자전거 물결은 오토바이로 바뀌어 있었으며 이 오토바이 물결은 역시 급격히 늘어난 차량들과 도로차지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면 사서 마실 수 있는 코카콜라, 즐비한 백화점 가게들, 만일 호치민시로만 국한한다면 베트남의 변화 그 격랑은 참으로 놀라웠다. 불과, 3년 만에 무섭게 변하고있는 베트남의 모습에 놀라는 내게 호치민시의 한 교민은 단 며칠동안 한국으로 출장을 갔다온 사이에도 베트남은 변하는것 같다고 들려주었다.
이제 더이상 한국은 베트남의 적이 아니었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적이 되는 국제사회의 철칙이 오늘의 한국과 베트남에 정직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매번 확실하게 감지할수가 있었다. 한국이 과거 그들의 적이었다는 사실보다 현재 그들에게 중요한것은 한국이 그들보다 잘 산다는 사실 그자체인것 같았다. 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한국처럼 잘 살수가 있을까하는 것에 쏠려있는 듯 했다.
잘 사는것에 대한 그들의 관심에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지만 나는 잘 사는것에 집중되어 있는 그들의 열망, 욕구가 오히려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따라서 나는 잘사는 것을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될때마다 잘사는것이 그렇게 중요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 해주고자 노력했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한국이 잘사는 나라로 가고는 있지만 그 대가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 조금 늦게 잘사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함께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심성, 좋은 인간성을 잃지 않으면서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잘 사는 일은 언제든지 시작할수가 있지만 한번 잃어버린 인간성과 좋은 심성은 되돌이 키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우리 한국은 지금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들려주기도 했다.
정말 나는 베트남이 우리처럼 잘사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어쩌면 그것은 전쟁이라는 어두운 역사를 공유한, 아니 그들의 어두운 역사에 참여한 나라의 일원으로서 내가 알려주어야할 의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우리는 현재 잘살기 위해 지난 세월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되찾아야만 할 절박한 상황속을 헤메고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속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 열망으로 가득찬 베트남 사람들에게(물론 불과 몇명뿐인 사람들이었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것이 아닌가하는 후회속에 잠겨야 했다. 우리가 잘사는 것도 사실이고 그들도 하루빨리 잘 산다면 그것 역시 좋은 일인데 괜스레 아는체하고 잘난체 한것이 아닌가하고.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대구 지하철 가스폭발 사건 속보를 뉴스로 전해들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할말조차 없는 그 사건을 접하며 나는 다시 후회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아예 『한국을 닮지 말라』 고 직설적으로 얘기해 주지 못한 사실에 대해 마음속깊이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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