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엔 어린이날이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그래서 5월을 가정의 달로 정하게 된 모양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의 달을 연례행사처럼 그저 덤덤하게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왕 맞이한 가정의 달을 좀 더 의미있게 보내기 위하여 우리의 가정을 한번 돌이켜 보고 우리의 가정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한번쯤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일상생활의 터전이다. 가정은 또한 사회성원을 재생산하고 보호ㆍ양육하며 교육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가정생활이 건전해야 건전한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가정은 전체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가 변하면 가정생활도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매우 급격한 변동을 경험하였다. 그 변동의 핵심은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그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사회변동의 와중에서 우리의 가정생활도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운데 하나로 자녀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실제로 1966년에 기혼부인당 평균 자녀수는 3.4명이었으나 1993년에는 1.8명으로 줄어들었다. 자녀수의 감소는 가족주기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자녀출산과 양육의 기간이 더욱 짧아지고 자녀들을 결혼시킨 후 부부만이 함께 지내는 기간이 그만큼 더 길어지게 되었다. 가족 내에서 부부관계는 그만큼 더 중요성을 띄게 된 것이다.
자녀의 수가 적어짐에 따라 부모의 자녀에 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것자체로는 나쁠 것이 없고, 오히려 바람직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심이 그릇된 방향으로 표현되는 데에 있다. 그 하나가 자녀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것이다. 자녀들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려 하고, 자녀들의 일에 일일이 간섭하며 보살펴 주려고 한다. 자녀들이 하는 행동에 지나치게 관대하고 규율을 가르치기 않고 내버려 둔다. 그 결과 자녀들은 홀로 서지도 못하고 이기적이고 방만한 성향을 갖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갖는 기대가 너무 크다. 자기 자녀의 능력이나 소질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자기 아이들이 일류가 되기를 바란다. 다른 집 아이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 자식을 위한 일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가족 이기주의가 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에 맞추느라고 기진맥진이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부모의 부푼 기대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자녀들은 고민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반항한다.
또다른 가족생활의 변화는 가족형태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형태는 직계가족이고, 그러한 제도의 원형은 아직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직장생활 등 여러가지 이유로 직계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결과 부부와 미혼의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의 형태가 늘어나고 노인부부가 따로 사는 형태가 늘어나게 되었다. 노인들은 그만큼 더 소외되고 자녀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전통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직계가족 제도하에서는 가계 계승의 축이 되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핵가족의 형태에서는 부부관계가 가장 중심적인 관계를 이룬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핵가족을 부부 중심 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부관계가 중요한 만큼 거기에 금이 가면 그 가족은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부부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부부관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인내의 수준이 오히려 더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이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은 가족 형태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또한 부부간 권력관계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권위주의적 지배와 이에대한 부인의 무조건적 순종은 이제 더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남녀평등의 이념이 확산되고 가족형태가 달라지면서 부부관계는 지배, 복종의 관계로부터 동반자적인 평등주의적 관계로 변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부부간 권력 관계의 변화는 부부간의 가사노동 분업에도 반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부부간 분업의 경계선이 엄격했으나 이제는 그 경계선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 부부간 서로 필요에 따라 가사 노동을 분담하는 형태가 점차 나타나고 있다. 결혼 후 취업여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가정생활의 변화들이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전통과 변화사이에는 혼란과 갈등이 수반되는 것이 상례이다. 가정생활의 전통적인 규범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정생활의 규범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아직 새로운 가정생활의 규범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규범에 입각한 건전한 가족공동체의 형성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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