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주일의 일이다. 평소에 잘 따르고 사제관에도 자주 놀러오는 유치부 꼬마 어린이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 아이의 이름은 문주 아녜스다. 언니 손을 잡고 사제관엘 들어선 문주는 내방을 들어와 앉은뱅이 회전의자에 앉아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신부님, 저 요즘 너무너무 바빠요』 그 말에 웃음부터 나왔다. 문주에게 물었다. 『뭐가 그리 바쁘니?』 그러자 옆에서 언니가 거든다. 『신부님 문주는 유치원을 두군데나 다녀요』. 처음 듣는 이야기다. 유치원은 기본으로 하나 다니고 그 다음에는 피아노다 미술이다해서 무슨 학원을 다닌다는 말을 들었어도 유치원을 두군데나 다닌다니! 문주의 말에 따르면 아침 9시 40분 차를 타고 초등학교 병설 유아원에 간단다. 그리고 12시 집으로 와서 밥대신 빵을 먹고 1시에는 또 다른 유치원엘 간단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4시에서 5시 사이. 집에 와서는 신나게 만화책을 보고 일찍 잠을 잔다고 한다.
아무 거리낌 없이 바쁘다고 하루 시간표를 주어삼키는 문주의 입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신부님. 근데요. 우리 아빠는요. 매일 밥만 먹고 잠만 자요. 우리하고 놀아주지도 않아요. 우리가 아빠한테 「신부님은 우리하고 잘 놀아주는데 아빠는 왜 우리하고 안 놀아주냐」고 말하면 아빠는 「그러면 신부님 집에 가서 신부님하고 살아라」 그렇게 말해요』. 아빠에 대한 문주의 불평은 끝이 없었다.
바쁜 도시 생활속에 지친 문주 아빠의 그 피곤함을 나는 이해한다. 딸들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문주 아빠인들 딸들과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아빠도 피곤에 지쳐 그런 여유가 없는가보다. 기쁘게 다니고 있지만 유치원을 두군데나 가야하기 때문에 바쁘다고 재잘대던 문주의 조그만 입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린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정두리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호부터는 서울 등촌동본당 보좌 신경남 신부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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