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순씨는 결혼 이듬해부터 중풍에 걸린 시어머니를 28년여동안 병구완했고 5남매를 훌륭히 키워냈다. 또한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며, 꽃동네 등 교회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회갑기념으로 자신이 자작곡한 음반과 테잎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김씨는 서울 성북구 주부백일장에서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다음은 시어머니 병구완을 하며 느낀바를 담담하게 얘기하고 있는 김씨의 수상작이다.
어머니! 하면 나는 긴 세월 병구완하던 시어머니 생각이 떠 오른다.
결혼하면 행복만이 있을줄 알았던 철부지 규수인 나에게 긴 병을 앓으시다가 며느리를 보자 중풍환자가 되신 시어머니는 큰 불행의 화면(畵面)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시집 온 것이 후회스러웠다.
5남매의 장남인 남편은 내 손을 꼭 부여잡고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주면 자기는 아내와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겠노라고 다짐했다.
남편의 효심을 받들어 노력하던 나는 차츰 시어머니께 효도함으로써 내자식들에게 훌륭한 어머니가 되어 가정평화를 누리고 싶었다.
문밖 출입을 못해 답답하신 어머니께 바람을 쏘여드릴 방법이 없나 궁리했다. 무릎 밑 다리를 펴시지 못하기 때문에 휠체어엔 타실 수 없고 제일 크고 좋은 유모차를 사서 금요일마다 경희동 산등시장에 모시고 다녔다.
아들이 열심히 벌어다 준 돈으로 예쁜 옷에 패물로 장식 한 어머니는 바깥 바람을 쏘이시며 아주 행복해 하셨다. 가끔 다섯 아이가 나서서 유모차를 밀어주니 나는 편안하고 자식들에게 좋은 표양이 되는 것 같아 제법 우쭐 해 지기까지 했다.
병상 20년에 검불같이 가벼워 지시더니 유모차 행군에도 응하지 못하시고 「저승에서 너를 위해 기도하마」하시고 돌아가신 어머니는 하늘나라서 늘 식구를 염려하시는 가신(家神)이 되셨다. 어머니 수발이 끝나고 자식들이 자라서 한가해진 나는 그간 써놓았던 글을 정서하여 작사하고 화성악을 공부해서 작곡하고 건강체조까지 꾸몄다. 그 수입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기로 작정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에게 상업고등학교라도 맞춰 주면 좌절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사천리로 대학을 나온 내 자식들이 자랑스럽고 감사해서 나는 조그만 정성이지만 동회를 통해 두명의 고등학생을 공부시켰다.
많은 학생을 공부시키고 싶은 내 희망사항에 제동이 걸린 것은 친 손자를 보게 되었고, 시집와서 대학원을 나온 그 며느리가 직장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몹시 고민하던 끝에 결론을 얻은 것은. 오래전 서울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때 온 국민이 통탄했었다. 나는 건축기사인 남편에게 노상 와우아파트가 아니길 당부했다. 그런데 그 후 청주의 우암아파트가 또 붕괴되었다.
이것은 세상사람의 양심이 무너진 것이다.
혼자 벌어 살기 힘든 세상이니 그 관계자의 아내가 맞벌이를 해서 내조했다면 이런 비극은 안 일어났을 것을.
내가 그대로 진출했다면 지금쯤 교감, 교장은 되었을 것이다. 며느리의 진출을 위해 60년을 살아온 시어미의 날개를 기꺼이 접을 수 밖에 없다. 또한 계속 아들의 존경하는 어머니가 되고파서 손자를 데려다가 기르게 되었다.
8개월 된 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니던 길을 걸으며 나는 하고픈 일 못하고 유모차를 밀고 사는 팔자로구나 쓴 웃음을 짓는다.
국민학교 학생들의 내게 모아지던 짜릿한 눈길을 아쉬워하며 어머니 유모차를 밀었는데, 일생공부로 가정평화의 비결을 강의할 때 어른들이 내게 집중하는 가슴뿌듯한 시선을 또 아쉬워하며 손자 유모차를 밀고 있다.
장학생 수를 늘이지 못하는 섭섭함이 여유있는 어머니들이 한 학생만이라도 공부시킨다면 성북구엔 가난한 이웃이 없어질텐데 하고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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