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모처럼 지방엘 내려갔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친구신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속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기쁨에 겨워 눈을 떴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그 기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현충일인 화요일 아침 8시에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경찰병력이 투입됐다는 소식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 기가 막히고 허탈하고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었다. 예로부터 종교시설들은 폭력의 피해를 받는 사람들의 보호처로 인정을 받아왔다. 이번에 한국통신 노조간부들도 그렇게 알고 우리교회와 불교에 보호를 요청해왔고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머물렀다. 그러나「문민」이라는 단어를 외피로 삼고 폭력을 저지르고 국민들을 탄압하는 이 정권은 명동성당과 조계사의 거룩함을 더럽혔다. 불법적인 쟁의를 한 것도 아니고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내에서 준법투쟁을 하는 가운데 대화로서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을 보수적인 언론을 통해 범법자로 만들고, 그들을 보호하던 거룩한 장소를 더럽힌 이 정권의 후안무치함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정권은「법집행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으며 법을 어긴 사람들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폭력적인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자행한 범죄 앞에서 성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외적으로 보아 김영삼 정권이 이번 폭력으로 명동성당과 조계사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거룩함은 이번 폭거로 인해 더욱 빛나고 있다.
진정한 거룩함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웃, 특별히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위해 사랑과 희생의 십자가를 질때 생겨나는 것이다. 박해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곳은 언제나 성역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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