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라의 춤은 땡기는 멋과 감칠 맛이 있다. 그들의 노랫말만 하더라도 신세대의 모든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해 준다. 경쾌한 감수성, 보일듯한 배꼽, 도시적 상상력, 솔직한 열림, 어긋나는 옷차림, 인과 율의 거부, 의식의 불연속성, 레게와 힘합, 그들 특유의 언어, 메이컵, 외모, 그리고 그 차림새의 화려함으로 어디서나 눈에 튄다. 중앙통에 나가보면 신세대들은 배꼽티에서부터 거의 다 벗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노출, 해체된 육체 이미지, 대담한 성적 표현, 귀걸이, 양성적(unisex)몸짓, 즉흥성, 넘치는 소비적 삶, 돈이 헤픈 것등 그들에게는 무거움이 없다. 가벼움, 자유, 개성, 기능적 에로티시즘, 육체찬미 등 오히려 구세대가 신세대의 문화에 종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들에게 어른이 없고 아버지가 없고 그러나 어른은 되고 싶지만 아이인 세대, 하지만 영원한 신세대는 없다.
가벼운 신세대와 무거운 구세대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도대체 만날수 없단 말인가? 신세대의 혼돈과 구세대의 질서를 통합할 균형은 어디에서 잡을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물건윤리라고 말하고 싶다. 신세대는 헤프다. 마구 쓰고 버린다. 반성없는 행동이다. 의식과잉과 의식결핍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시대의 식사장애가 그러한 예이다. 신경증 거식증과 대식증, 날씬함과 비만증의 공포, 그들이 개성을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가만히 들여다 보면 자본주의 상품논리에 포섭되고 있고 이른바 획일화, 일차원적인 인간으로 전락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소비문화속의 육체이다. 새로운 나르시즘이 아닌가.
문제는 신세대이든 구세대이든 우리 주위에는 편리하고 편리한 섬세하고 섬세한 무수한 정보 코드 기호 광고상품 물건 사물 도구들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 역설적인것은 개성을 추구하는 신세대가 똑같은 상품이나 기호를 소비함으로써 획일화 되고 타자지향적이고 과도하게 남을 의식하는 유형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물건과 사물, 도구에 둘러싸여 있고 TV나 PC를 통해서 이미지의 정보를 받고 있어도 이것에 대한 윤리적 태도는 아무도 보여 주지 않고 있다. 물건 자원 지구의 에너지는 쓰고 버리면 그만이라는 식의 물건에 대한 박해는 오히려 그들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물건윤리를 제시해 주지 않는다면 지구의 종말은 앞당겨 지게 될 것이며 날이 갈수록 절망적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 분명하다.
신세대의 가벼움은 장점이고 구세대의 무거움도 장점이다. 서로 인정해야 한다. 신세대가 필요한 삶의 기술은 절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