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나 내 안에 나를 만나고 싶을 때는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보고 싶어진다. 인생살이에 갈증을 느끼던 차, 긴 세월 성당건축으로 고생한 보너스라며 기차여행이 발표됐다. 받아놓은 날은 차려놓은 밥상이라 했던가, 어느새 다가온 추억의 기차여행으로 새벽잠을 설치며 청주역에 모여 구역별 스카프와 이름표를 목에 걸고 나니 또 한 번 공동체 기도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25년 만에 첫 나들이 길을 나서는 복대동본당 700여 명 형제자매는 녹색 조끼 피켓 뒤에 졸졸… 영락없는 유년의 소풍 길이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만큼 기쁨이 넘치는 잔치분위기로 속에서 저절로 터지는 감사와 찬미 화음으로 나는 난생 처음 기차에서 성체를 영하며 감격을 담아 기차처럼 긴 기도를 올린다. “주님! 이 은총의 축복이 뿌리 깊은 신앙이 되어 초대받은 모든 이가 영원히 주님을 뵙게 하소서.”
오락시간과 장기자랑으로 인한 이런저런 즐거움은 가뭄에 단비가 되어 뭉툭한 정이 돋아나고 삶의 무게도 녹아내려 냉담 교우들과 서먹한 벽을 허물고 행복한 웃음이 됐다. 열차는 우리 일행을 정동진역 모래시계공원에 개미떼인 양 쏟아놓았다.
와~ 야호~. 가슴 탁 트이는 망망대해 수평선 저 멀리 눈이 시리도록 황홀한 쪽빛 동해의 물보라는 언제 보아도 환상적이고 신비로웠다.
하얀 포말웃음 앞세우고 겹겹이 파도로 달려와 환호하고 바닷바람이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이 와서 해 묵은 삶의 무게를 던지지만, 한결같이 덥석 품어 안으며 정화시키는 깊고 넓은 동해는 고난의 삶에도 우리를 품어주신 성모님의 가슴이고, 짜디짠 바닷물이 부패를 막듯,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아픔도 슬픔도 기도로 걸러 성화시키는 수도자들처럼 저 푸른 바다는 한결같이 넉넉하다.
이렇게 충전된 에너지로 모터유람선에 몸을 싣고 천길 푸른 바다를 가르니 나르는 갈매기 양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하던지. 한편 모래시계공원에서는 보물찾기에 이어, 노래 왕중왕을 뽑으려 어깨춤을 들썩이는 응원에 남녀노소 없이 서로 흥을 보탠다.
힘찬 바람 뒤에 실바람이 묻어가듯 25년 길고 긴 고뇌 속에서도 묵묵히 주님만을 의탁하며 희망의 디딤돌로 행복한 복대동본당 형제자매는 성당 일이라면 시간과 땀 물질까지도 솔선수범이고 뒤에서 힘을 실어주는 레지오 기도부대까지 얼마나 고맙고 존경스러운지, 거저 따라가는 나는 늘 고마운 마음뿐이다.
정동진 솔밭공원을 가득 메운 형제자매들의 환한 웃음에 맛깔스러운 앙코르송으로 화답해주시는 멋쟁이 김홍열 주임신부님은 양 떼가 가는 길에 장애물이라면 태산이라도 걷어내는 집념이시고 보니, 아직 굽은 허리를 채 펴기도 전이건만 크고 적음을 탓하지 않고, 같은 대열에 하나로 아울러 놓는 평정은 가슴 탁 트이는 또 하나의 동해바다시다. 나날이 인기상승인 김영현 보좌신부님 역시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강론이면 강론, 접어두었던 끼와 재치를 녹인 엔돌핀으로 삶에 찌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주시곤 하니, 우리는 물 만난 동해에 고래 떼가 아닐는지. 때와 장소에 따라 척척 준비된 만능 엔터테이너로 대처해주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을 모실 수 있음은 마르지 않는 샘물을 축복받은 부자라고 되뇌어본다.
‘더불어 살아야 행복하다’는 말을 실감하며 하루해가 서산에 노을 질 무렵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돌아가기 위해 떠난 온 여행에 돛을 내리고 우리 일행은 다시 태백선에 올랐다.
첩첩산중 하늘 맞닿은 태백산 줄기를 가로질러 오르고 내리는 철마도 직선만의 위험을 아는 듯 때로는 후진과 곡선으로 가쁜 숨을 고를 때, 지나간 내 삶의 시리고 아팠던 굽잇길을 보는 것 같아 콧등이 찡 눈시울 젖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신앙의 뿌리가 영그는 시간이고 강건해지기 위한 은총이었으니 굽이굽이 고개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우리네 삶은 힘들어도 행복하다.
메마른 가슴 적셔준 추억의 기차여행으로 심기일전하여 멈추어 서서 녹슬어가는 나홀로 철마가 아니라 나와의 인연은 끌어안고 달리는 기차처럼, 공동체 기적 소리로 신앙의 렌즈를 닦으며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다.
이제 기차여행은 추억으로 남겠지만, 우리 복대동본당 공동체를 실은 천국행 기차는 멈추지 않고 주님을 향해 영원히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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